짧은 체류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도리를 제대로 하고 돌아갔구나.
강하고 엄격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이제는 자애롭다 못해 양순해지시고
오히려 자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시지.
난 그런 내 어머니에게 자주 오가기는 커녕
이따금 침묵의 시위를 하여
불편하게 해 드리기도 한단다.
은선 어머니를 찾아 뵈었다니
참 잘 했다.
누구나
사는 날 동안 정신 온전하게 살다가 하직하고 싶지만
그게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잖니?
알아보지도 못하는 친구 어머니를 방문한 네 마음이 참 곱다.
이번 학기에 우리 학교 영양사가 바뀌고 난 후
교사와 2,3학년 학생들 사이에 급식 메뉴가 화제에 오르고 있어.
단 한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
모두에게 만족감을 주는 식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야.
첫인사로 고등학생인 자기 아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식사 준비를 하겠다더니
매사에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게 한다.
식비는 같지만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맛있고, 다양한 식단을 구성하여 만족도가 높아졌어.
어쩌다 밥이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져도
즉시 전교직원에게 메세지를 보내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 밥을 먹여 보낼테니 양해해 달라는 말을 하는데
그 말 속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거야.
그 영양사를 보며
한 사람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는지를 실감했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더군.
기순아,
나이 들어 갈수록
끊임 없이 나를 비우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믿음을 채워가며
물 흐르듯 살자꾸나.
잘 지내라.
2011.03.25. 선리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최기순<ichoigo@naver.com>
받는사람 : <moon-sl@hanmail.net>
날짜: 2011년 3월 22일 화요일, 12시 23분 16초 +0900
제목: 선리야 !
눈 깜박할 사이라더니
정말 짧은 시간이 날아가 버리듯
2주가 지나 버렸구나
이제야 8시간 뒤로 되돌아와
나의 삶의 자리에 서있는 나를 깨닫는다.
오자마자
그 다음날부터 일하고
오늘에야 여유를 갖는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한 가장 큰 일은
엄마의 가장 다정한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주었다는 것.
항상 강하고 따스하지만 엄하셨던 옛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냥 여리고 약해진 엄마의 모습을 볼 때의 아픈 마음은 차마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었고.
내가 잠시 곁에 있다는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해하시던 모습을 가슴에 담고
다시 뵈는날까지 참고 견디며 지내야겠지
늘 곁에 있지 못하지만
가슴 속에선 함께 숨쉬는
마음의 벗들
다행히 너도 만나
그동안의 가슴속 깊이 깔려있던 갈증은 해소되었건만,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여전한건
정례와 현승이가 이땅에 마지막으로 남겨 준 흔적이라도
더듬어 보려 했던 계획을 이루지 못해서일까
다음엔 꼭 함께 가자
너 만난 다음날은
은선(류 은선 기억나니?)이 엄마가
치매가 심하셔서 유자원(위생병원내)에 계시거든.
잠시 곁에 앉아
당신이 쓰신 시집 읽어 드리고(비록 알아 듣지 못하시고 먹는것조차 잊어 버리셨지만..)
아마도 그 분 돌아가시기 전에 못 뵈올것 같아서
정말 숨쉴 틈 밖에 없이 바빴지만
짬을 내었었어.
인생이 이런거구나를 다시 한번 깨닫게하는 계기가 되었던것 같다
매우 짧고 바빴던 시간들이었지만
선리야
너와 나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한 날들을 보내자꾸나
더도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
지금처럼
모두 다 별것이 아닌것을
체면과 명예, 끝없는 욕망과 이기심 때문에,
참 어렵고 힘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다시 한번 느꼈단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렴.
기순 ---
'도란도란 > 벗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난 여의도 (0) | 2011.04.19 |
---|---|
수리산 봄소풍 (0) | 2011.04.13 |
어느 집 규수일까요? (0) | 2011.03.15 |
그리움이 사무치면 갈증이 되는 것을... (0) | 2011.03.15 |
의왕부곡초등 23기 2010 송년회 (0) | 2010.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