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좋아하는 글, 생각나는 글

나뭇잎 하나 / 김광규

달처럼 2012. 1. 13. 23:04

나뭇잎 하나 

                             김광규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끼지 못했었다

이렇게 한 해가 다 가고
눈발이 드문드문 흩날리던 날
앙상한 대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문득 혼자서 떨어졌다

저마다 한 개씩 돋아나
여럿이 모여서 한여름 살고
마침내 저마다 한 개씩 떨어져
그 많은 나뭇잎들
사라지는 것을 보여 주면서

무성한 신록과 녹음 속에서 나뭇잎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허다했다.

단풍이 들고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앞에서도 나뭇잎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나뭇가지 끝에 오직 하나 남은 나뭇잎이 지고서야 그 부재를 깨닫는다.

 

나뭇잎의 생성과 소멸에 인생의 의미가 겹쳐진다.  

개별자로 태어나 공동체를 이루며 아름다운 생을 이루며 살다가

궁극에는 각자 소멸되어 가는 그 나뭇잎 하나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