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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끼고 벼랑길을 걷다 - 무주 '벼룻길'

달처럼 2012. 4. 29. 01:41

벼랑에 피어난 봄


잠두마을을 지나 찾아간 곳은 금강 마실길의 또 다른 구간인 '벼룻길'이다. 조항산 자락에 자리한 벼룻길은 강폭이 좁은 금강이 조용히 흐르고, 그 옆으로 풀이 자라난 농로가 이어진다. 벼룻길은 곧 ‘강이나 바닷가의 벼랑길’을 뜻하는 말로 이곳 주민들은 '보뚝길'로 부다.

비단강, 금강(錦江)은 전북 장수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진안을 거쳐 무주에 이르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잔잔히 흐른다. 일대는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청정 지역.

 

금강을 끼고 산비탈의 좁은 소로를 따라 걷는다. 원래 이 길은 벼룻길이 끝나는 건너편 굴암리 율소마을의 대뜰에 물을 대기 위해서 일제 강점기에 놓았던 농수로였다. 대소리와 율소 마을을 이어주는 지름길이어서, 율소마을 앞의 대티교가 놓이기 전에는 율소마을의 주민들이 부남면소재지로 가려면 이 길을 지났다. 주민들은 대소리에 서는 오일장을 보러 이 길을 걸었고, 아이들도 이 길로 면소재지의 학교에 다녔다.

 

벼룻길은 고작 1.2km에 불과하다. 복숭아꽃이 한창인 과수밭 밭머리를 지나 좁은 벼랑길에 들어서자마자 돌길 주변으로 야생화가 반긴다. 바위 벼랑에 진달래 꽃가지가 달려 있고, 풀숲에는 나리꽃 줄기가 여기저기 돋아 있다. 달래가 삐죽이 솟아난 이웃에 금낭화가 야생의 모습 그대로 우아한 꽃 줄기를 펼친다. 강물과 어우러진 강변의 나무들이 신록이다.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신록이 그대로 강물에 반영돼 초록물이다. 벼랑에도, 강에도 온통 봄빛이다.

벼룻길 중간에 이르면 강변에 바위가 서 있다. 이름 하여 ‘각시바위’다. 각시바위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대유리 봉길마을에 시집온 며느리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벼랑에서 기도를 했더니 바위가 솟아올라 `각시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선녀가 목욕하러 왔다가 옷을 잃어버려 바위로 굳었다거나 구박받던 며느리가 돌로 변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벼룻길은 각시바위 아래의 10여 m 길이의 동굴을 통과한다. 어른 한두 명이 고개 숙이고 지날 정도이다. 벼룻길을 막아선 바위를 정으로 쪼아서 낸 동굴이라 했다. 논바닥에 물을 대기 위한 농민들의 우직한 노동이 바위를 뚫어 길을 냈다. 각시 바위 앞은 수심이 깊다. 선녀가 목욕했다는 '각시소'다.

 

강 건너 편은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4대강 공사의 일환인지, 강둑에는 중장비 차량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자전거 도로가 구태여 인공적인 아스팔트 일색일 필요가 있을까? 구간에 따라 옛길을 그대로 살려 연결하면 생태계가 훼손되지 않을 뿐더러 자연과 호흡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될 텐데. 애써 강 건너 맨 흙이 드러난 공사 현장을 뇌리에서 지우며 걷는다.

 

무주군은 '벼길'을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했다.

 

 

 

굴암리 율소 마을에서 벼랑길로 들어서는 들머리에 있는 복숭아밭에 복사꽃이 한창이다.

옛 사람들은 집안에 복숭아 나무를 잘 심지 않았다고 한다. 처자들 봄바람 날까 저어하여.

있을 법한 얘기다.

 

 

절벽 아래 돌작길이 펼쳐졌다. 너덜겅이라고 하던가.

 

 

강물이 흐른다. 봄날이 흐른다.

 

 

 

각시 바위와 동굴

 

 

 

동굴 밖으로 금강의 푸른 물이 보인다.

 

 

 

 

비단강 수통리 강변길

버스에서 내려 적벽강 옆으로 난 길로 향한다.

잠시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였던 정자에 올라 다리 쉼을 하고 임현식의 약초밭을 거쳐 잘 생긴 소나무 옆을 지나 찰랑이는 강물에 닿아있는 옛길을 걷는다. 한 시간 여를 걸을 수 있는 길이지만, 전 날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 여울에 놓인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있어 건너기를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