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문학의 산실을 찾아
평창 기행 3. 이효석 생가터
달처럼
2011. 8. 30. 15:43
이효석이 1907년 출생하여 14살까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후에 기와집으로 보수하여 외양이 바뀌었다.
담을 이웃한 음식점 소유의 땅으로 접근을 제한하는 금줄이 드리워져 을씨년스럽다.

금줄은 원래 아들 낳았을 때만 쳤던 것 아녔나요?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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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11.08.29. 11:17


글쎄요. 무슨 사고 현장도 아니고...
그 땅 주인은 '메밀꽃 필 무렵'을 상호로 쓰더군요.
귀한 도자기를 고양이 우유 그릇으로 쓰면서 고양이를 팔아 먹던 사람의 우화가 오버랩됩니다.
그 땅 주인은 '메밀꽃 필 무렵'을 상호로 쓰더군요.
귀한 도자기를 고양이 우유 그릇으로 쓰면서 고양이를 팔아 먹던 사람의 우화가 오버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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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11.08.29. 19:13


yes24에서 유홍준 교수의 신작 관련 대담 내용을 보았더니
100년 후에 되돌아 볼, 지금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더군요.
비리 방지를 명분으로 한 턴키입찰 방식이나 여러가지 제한이 건축가가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고 해요.
100년 후에 되돌아 볼, 지금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더군요.
비리 방지를 명분으로 한 턴키입찰 방식이나 여러가지 제한이 건축가가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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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11.08.29. 13:57


실향민인 저의 친정은 제 출생지를 가본적으로 삼았지요.
초등학교 때 이사하고 십 여 년만에 혼자 찾아가보니 도시 개발로 공원이 되었어요.
흔적 없이 사라진 집터를 눈어림으로 짐작하며 돌아서서 한동안 허망하더이다.
초등학교 때 이사하고 십 여 년만에 혼자 찾아가보니 도시 개발로 공원이 되었어요.
흔적 없이 사라진 집터를 눈어림으로 짐작하며 돌아서서 한동안 허망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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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이 건재한 저는 참 행복한 사람 이군요.


옛날에 제가 갔을때에는 이효석 생가집이 초가지붕이었는데 그리고 뒷동산이 나즈막히 참 아름다웠는데
언제 기와 지붕니 됐나요. 아마 관리하기가 나뻐서 그렇게 했나보죠? 이름다운 여행 부럽군요. 사진 감사합니다.
언제 기와 지붕니 됐나요. 아마 관리하기가 나뻐서 그렇게 했나보죠? 이름다운 여행 부럽군요.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