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문학의 산실을 찾아

평창 기행 3. 이효석 생가터

달처럼 2011. 8. 30. 15:43

 

 

 이효석이 1907년 출생하여 14살까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으로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후 기와집으로 보수하여 외양이 바뀌었다.

담을 이웃한 음식점 소유의 땅으로 접근을 제한하는 금줄이 드리워져 을씨년스럽다.

 

 

 

 

 

 

 

 

 

 

맑고고운 11.08.28. 14:25
금줄은 원래 아들 낳았을 때만 쳤던 것 아녔나요? 에효~
 
자하 11.08.29. 11:17 new
글쎄요. 무슨 사고 현장도 아니고...
그 땅 주인은 '메밀꽃 필 무렵'을 상호로 쓰더군요.
귀한 도자기를 고양이 우유 그릇으로 쓰면서 고양이를 팔아 먹던 사람의 우화가 오버랩됩니다.
 
 
제비꽃 11.08.28. 14:52
사람이 없는 그대로의 모습도 멋있는걸요.
금줄이 안 보이게도 잘 찍어 주셨네요^*^
  
자하 11.08.29. 11:18 new
앉을 자리 찾아 들어가니 그 각도가 나왔어요. 후훗
  
 
김경식 11.08.29. 13:20 new
이곳이 진짜 생가이지요. 물론 지붕은 아니지만...
효석 유족과 평창군, 생가 주인과 평창군의 갈등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자하 11.08.29. 11:19 new
더 훼손되기 전에 대책이 세워졌으면 좋겠어요.
 
 
자연스런 11.08.29. 09:52 new
정말 아픈 현실입니다~~~문화재를 대하는 성숙한 의식이 경제논리를 뛰어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하 11.08.29. 19:13 new
yes24에서 유홍준 교수의 신작 관련 대담 내용을 보았더니
100년 후에 되돌아 볼, 지금 이 시대의 문화유산이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더군요.
비리 방지를 명분으로 한 턴키입찰 방식이나 여러가지 제한이 건축가가 창조적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한다고 해요. 
 
 
 
여서완 11.08.29. 12:38 new
팔아 버린 고향집을 떠올려 봅니다. 언젠가는 그리움에 달려가 울컥했던 기억이 남네요.
 
자하 11.08.29. 13:57 new
실향민인 저의 친정은 제 출생지를 가본적으로 삼았지요.
초등학교 때 이사하고 십 여 년만에 혼자 찾아가보니 도시 개발로 공원이 되었어요.
흔적 없이 사라진 집터를 눈어림으로 짐작하며 돌아서서 한동안 허망하더이다.

 

맑고고운
11.08.29. 14:07 new
고향집이 건재한 저는 참 행복한 사람 이군요.
 
 
정록 11:50 new
옛날에 제가 갔을때에는 이효석 생가집이 초가지붕이었는데 그리고 뒷동산이 나즈막히 참 아름다웠는데
언제 기와 지붕니 됐나요. 아마 관리하기가 나뻐서 그렇게 했나보죠? 이름다운 여행 부럽군요.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