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문학의 산실을 찾아

[길 위의 인문학] '향수' 속 실개천은 詩처럼 휘돌아 나오고…

달처럼 2011. 9. 19. 09:32

정지용과 박연 자취 따라… 옥천·영동

"박연(朴堧) 선생을 현대적 관점으로 살펴보자면, 그는 음악으로 사람 마음을 교화해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겁니다. 판소리와 관련해서는 조선시대 당시에도 함께 나누는 실천적인 음악성을 강조한 셈이지요."

17일 오전 충북 영동 '난계 국악기 체험전수관' 소공연장에서는 국악인 차복순 전북도립창극단 부수석의 박연에 대한 설명이 차분히 이어졌다. 이날 '시 따라 음악 따라'라는 주제로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 72명은 박연과 현대시인 정지용(鄭芝溶)의 자취를 따라 충북 영동·옥천지역을 찾았다.

난계(蘭溪) 박연(1378~1458)은 세종을 도와 음악을 정비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악률(樂律·음을 높낮이에 따라 이론적으로 정돈한 체계)에 정통하여 세종 7년(1425) 아악(雅樂)의 율조와 악기 그림, 악보를 같이 실은 악서(樂書)를 편찬했고, 피리의 일종인 적(笛)과 거문고, 비파 연주에 뛰어났으며 조정의 조회 때 아악을 연주토록 했다. 국악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한복 차림으로 탐방단을 맞은 차씨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하나인 흥보가(흥부가)의 몇 대목을 들려주었다. 배고픈 흥부의 아들이 어머니더러 송편 세 개만 해달라는 대목, 부자가 된 흥부를 찾은 놀부가 심술을 부리는 장면 등이었다. 차씨는 "우리 가락은 추임새가 무척 중요하다. '얼씨구, 좋다, 그렇지' 같은 추임새가 없으면 노래할 때 힘이 나지 않는다"며 관객을 부추겼다. 소극적으로 듣기만 하던 탐방단은 흥부의 박 안에서 쌀과 돈이 쏟아져 나오는 대목부터는 "얼씨구" 하며 가락을 맞췄다.

17일‘길 위의 인문학’탐방단이 충북 옥천군에 있는‘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에서 정호승 시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옥천=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체험전수관에서는 장구채 쥐는 법부터 장구 옆면 가죽을 때리는 요령, '덩덩 쿵따쿵' 휘모리 장단을 맞추는 법까지 장구의 기본을 배웠다. 장병천 체험전수관 팀장은 "어깨를 둥실거리고 리듬을 타면서 연주해야 한다"고 요령을 일러줬다. "태어나서 장구를 처음 만져 봤다"는 백인영(44·경기 부천 원미동)씨는 "옛날 어르신들 두드리는 걸 볼 때는 간단해 보이던데, 팔도 아프고 박자 맞추기가 어렵다"며 웃었다.

탐방단은 이어 정지용(1902~1950)의 생가가 있는 옥천으로 이동했다. 섬세하고 선명한 언어 구사로 현대시의 새 경지를 연 정지용은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에서 태어났다. 이곳서 유년을 보내다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14세부터 객지생활을 시작하였다. 1974년에 다른 집이 들어섰던 생가는 1996년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생가 앞으로는 정지용의 대표시 '향수'의 첫 문장에 등장하는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초빙 강사로 나선 정호승 시인은 "중학생 때 누가 쓴 건지도 모르고 읽은 정지용의 시 '호수'를 통해 시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며 생가 방 안 액자에도 담겨 있는 '호수' 전문을 낭송했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정씨는 2000년 제12회 정지용문학상을 받은 시인이기도 하다. 수상작 '하늘의 그물'은 이렇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 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 정씨는 "도덕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응용했다. 새끼와 이동하는 기러기들만 하늘의 그물을 빠져나간다는 발상을 통해 모성의 힘을 말하고 싶었다. 고향을 표현하는 정지용의 시 또한 모성의 뜨거움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예술과 미학을 강연한 초빙 강사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담은 정지용의 시와 실감 나고 리드미컬한 흥부가의 가사를 듣다보면 인간의 감성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17일 ‘길 위의 인문학’ 탐방단이 충북 옥천군에 있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 생가에서 정호승 시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입력 : 2011.09.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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