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으로, 인문학의 울림으로
[길 위의 인문학]
1부 인문학의 길 걷기
ㅇ 탐방 주제 : ‘도심 속에 인문학의 길을 닦다.’
ㅇ 탐방 일정 : 2010. 5. 29
ㅇ 탐방 코스 : 청권사 → 몽마르뜨공원 → 누에다리 → 국립중앙도서관
ㅇ 초빙 인사
- 신병주 건국대 교수 (조선 초기 역사 연구, ‘조선 최고의 명저’ 등 저서 다수)
2부 인문학 콘서트
ㅇ 콘서트 주제 : ‘가족으로, 인문학의 울림으로’
ㅇ 콘서트 일정 : 2010. 5. 29(토) 17:30 ~ 19:30
ㅇ 콘서트 장소 : 국립중앙도서관 야외 광장
ㅇ 초빙 인사 (사회 : 유열)
- 김정운 명지대 교수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 저서 다수)
- 이주향 수원대 교수 (‘이주향의 치유하는 책 읽기’ 등 저서 다수)
- 서혜정 성우 (재밌는 TV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 등)
ㅇ 주최 : 국립중앙도서관, 조선일보, 교보문고
ㅇ 주관 : 한국도서관협회
녹음이 짙어 가는 5월 하순,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방배동에 있는 청권사(淸權祠)를 찾았다.
청권사는 세종대왕의 형님이자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사당이다.
대로변에 있지만 담장 안은 아름드리 수목들이 녹음을 드리우고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평온한 공간이다.
햇살 가득한 정원에서 조별로 모여 앉아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로부터 '효령대군과 청권사'라는 주제 강연을 들었다.
효령대군을 읽는 중심어는 효제(孝悌), 불교(佛敎), 장수(長壽)이다.
태종이 '효령(孝寧)과 충령(忠寧)이 조석으로 드나들며 혼정신성(昏定晨省)하였는데'라고 한 것이나, 변계량이 '효령대군은 온아하고 문명한 자질을 가진데다가 효제와 충신의 행실에 독실하며, 숭고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겸손하게 하여 털끝만큼도 교만한 기색이 없으니, 그처럼 훌륭할 수 없다'라고 기록한 것은 효령의 인물됨을 보여 준다.
태종이 충령을 후계자로 확신하자 효령은 미련을 일찍 접고 평생을 불교 진흥에 힘썼다.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던 시절 '유불조화론'을 주창하고 불교의 중흔과 불사 창건에 힘을 기울였다. 국보 2호인 탑골공원의 10층 석탑과 보물 2호인 '보신각종(원각사종)'을 직접 감독하였고, 관악사와 백련사 등수많은 사찰을 중창하였으며, 불경 언해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효령은 이례적인 장수 인물이다. 조선 역대 왕의 평균 수명이 48세인데, 그는 1396년(태조 5)에 태어나 1486년(성종 17) 졸하였으니 91세를 누렸다.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불교에 심취하여 명산 대천을 두루 돌아다닌 것에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탐방 행사를 진행한 한국도서관협회 이용훈 부장
효령대군과 청권사에 대해 강의하는 신병주 교수
강의 후에는 걷기 행사가 이어졌다. 청권사를 나와 몽마르뜨 공원을 향했다.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인 언덕길이다.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한 시간 가량을 걷다보니 다른 참가자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인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 처음 만났지만 공통 화제가 많다.
독특한 형상의 누에다리에 도착하여 남들 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주는 누에'에 손을 대 본다. 내 소원은 무엇일까?
다리에 서니 목적지인 국립중앙도서관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청권사 뜰에서 몽마르뜨공원을 향해 출발 준비
몽마르뜨 언덕길
누에 모양을 형상화한 누에다리
이 다리의 진면목을 보려면 야간에 조명이 들어 왔을 때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작품명 : 서초의 꿈
국립중앙도서관에 도착하니 야외 광장에는 2부 순서를 위해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인문학 콘서트 '가족으로, 인문학의 울림으로'는 가수 유열 씨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모철민 국립중앙도서관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이주향 교수(수원대, 철학박사)와 김정운 교수(명지대, 심리학박사)가 특강을 했고,
사이사이에 성우 서혜정 씨의 시낭송,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짜임새 있게 이어졌다.
이주향 교수(수원대, 철학박사)는 '길 위의 현자, 소크라테스'를 주제로 강의하면서
광야에서 평생을 헤맨 모세는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하면서 풀처럼 짧은 인생도 수고와 슬픔 뿐이라고 토로했다.
니체는 이것을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운명'으로 보았다. 모세는 길 위에서 자기 운명을 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길 위에서 나를 발견한 인물이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스승이 독배를 마시는 날의 대화를 이렇게 기록했다.
"쾌락은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다. 쾌락과 고통은 한 머리의 두 얼굴 같다."
"죽는다는 것은 살았기 때문이다. 죽음은 삶에서 오고, 삶은 죽음에서 온다. 죽음은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죽은 다음에 영혼이 육체를 떠나 홀로 자유로워지듯, 순수한 것을 얻으려면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논리로
죽음을 오히려 담담하게 맞이한다.
이 교수는 소크라테스를 못 생긴 외모 속에 감추어진 현자라고 소개하면서
'학자를 만나면 지식이 증가하고, 현자를 만나면 삶이 바뀐다.'
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를 들으며 고전 속의 인물 소크라테스를 현대로 끌어낸 느낌이 들었다.
김정운 교수(명지대, 심리학박사)는 '의사 소통의 심리학'을 강의하며,
사랑의 세 가지 원칙을 육아와 결부하여 쉽고도 귀에 쏙 들어오는 화법을 구사했다.
첫째, Touch (만지기)
엄마가 어린 아이를 만지며 둘 다 행복해진다.
가까운 사람을 만지는 것은 의사소통의 기본이다.
둘째, Turn - taking (순서 바꾸기)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어른들이 맞장구를 치며 반응한다.
상대가 대답할 기회를 주고, 내 순서가 오면 무조건 반응하라.
셋째, Affect - attunement (정서 공유)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 온 가족이 감탄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와 같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긴다.
간주관성(inter-sujectivity), 거울 뉴런...
아기는 엄마의 감탄을 먹고 자란다.
정서 공유를 통해 감탄하는 것을 배운다.
칸트는 장엄의 미학에서 여자들이 장수하는 이유는 감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탄할 일이 없어도 감탄하면 감탄할 일이 생긴다.
감탄을 받으면 잘 한다. 부부도 서로 감탄해 주어라. (한탄하지 말고.)
요사이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터라 기대 이상으로 흡족한 시간이었다.
두 강의를 들으며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새로 추가되었다.
팝페라 그룹 '엘루체'의 공연
공연 첫 순서는 남성 5인조 팝페라 그룹 '엘루체'가 '내가 만약', '오 해피 데이'를 열창하는 무대였다.
풍부한 성량과 음악성으로 단번에 청중을 사로잡았는데, 역시 멤버들이 모두 성악 전공자라고 한다.
브라스밴드 공연
'남녀탐구생활'로 잘 알려진 성우 서혜정 씨가 시낭송을 위해 초대되었다.
신경림 시인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낭송하고,
관객을 위한 서비스로 허영자의 시 '너무 가볍다'를 탐구생활 억양으로 읊어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사회자 유열 씨가 최하림 시인의 '할머니들이 도란도란'을 낭송하려고 안경을 꺼내 쓴다.
뮤지컬 갈라 콘서트
뮤지컬 가수 고예주 씨가 때론 감미롭게, 때론 애절하게 '미녀와 야수', '왕의 남자 OST',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once upon a dream'을 연속으로 불렀다.
작은 체구에서 어찌 그리 다이나믹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정녕 놀라웠다.
'의사소통의 심리학'을 강의하는 명지대 김정운 교수
미키 마우스 캐릭터의 빨간 넥타이가 그의 톡톡 튀는 개성을 말해준다.
< 낭송시 >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 흙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전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신경림, '할머니와 어머니의 실루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