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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그림으로 본 느림의 미학

달처럼 2016. 6. 29. 21:03

남양주시 인문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인문콘서트가 열렸다. 
강연을 맡은 미술평론가 손철주 씨는 우리 미술의 '느림'의 의미를 밝히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느림은 speed의 緩急이 아니라 '輕薄'의 상대적 개념이다. 悠長하고 緩曲하다는 함의가 있다. '가볍고, 발랄하고, 뜨고, 얄팍한(輕佻浮薄)' 것을 추구하는 첨단 문명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느림'을 대변하는 그림에 능호관 이인상의 문인화 '長白山'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담묵으로 그린 그림은 그린 듯 안 그린 듯 여백이 많다. 먼 산은 윤곽만 아슴하다.
문인화는 그림과 시가 협업한다. 장백산을 그린 화폭의 시제는 다음과 같다.
"가을 비 맞으며 김상숙 형을 찾아 갔더니
그 형이 종이를 내어놓고 그림을 그려달라 하네.
곽충서의 종이연이 떠올랐다. 
.....
자네 정말 게으르기 짝이 없구먼..."
곽충서는 송나라 문인으로 권세 앞에서 허리가 꼿꼿하여 조선의 문인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능호관의 내면과 곽충서의 고사가 만나니 그림 하나에 사연이 굽이친다.
文字香 書卷氣가 풍겨온다. 
 
다음으로 화면에 비친 그림은 심사정의 '고슴도치와 오이'.
고슴도치가 오이를 서리하는 장면이다. 자기 몸에 박힌 오이는 제가 못 먹는다. 자식에게 먹이려는 것이겠지. 절로 속담이 연상된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고슴도치와 오이는 옛 그림에 빈번히 등장한다. 심사정의 스승인 겸재도, 홍진구도 고슴도치와 오이를 그렸다.
가시가 많은 것은 '다산'을,
넝쿨이 뻗은 것은 '대대손손 번창'을,
맨드라미는 그 한자 이름인 鷄冠花 때문에 '벼슬'을,
벌은 한자어 '蜂' 자와 동음이의어인 '封'의 의미를 빌어 '관직'을 상징한다.
그림을 사이에 두고 끝없는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이어서 표암 강세황의 '香遠益淸'이 소개된다. 끝만 붉은 연꽃인 '일점홍'이 화폭 중앙에 크게 자리잡았고, 개구리밥, 개구리, 여치로 갈수록 아주 작게 숨겨 두었다.
염계 주돈이는 '愛蓮說'에서 연을 사랑하는 이유를 멀리 갈수록 향기가 맑아지는 향기(香遠益淸) 때문이라 했다. 연꽃은 멀리서 관조해야 하듯, 선비는 멀리서 존경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강의는 강세황이 부채에 난과 국화를 그린 '扇面蘭菊'으로 넘어가며, 옛 사람의 滑稽로 이어진다. 태진궁 양귀비와 조비연이 화제에 오르고. 초나라 굴원의 어부사를 읊다보니 두 시간 강의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림은 본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고 한다.
배울수록 새로이 보이고, 보일수록 무던히 즐겁다.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