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일하며 사랑하며

문경 새재

달처럼 2011. 3. 11. 01:53

2011년 2월 20일 전국 삼육교사대회가 열리는 문경으로 향하던 중 문경 새재에 들렀다.

점심 식사를 하고 집결하는 것이어서 문경 새재 입구에서 식사를  한 후 1, 2, 3관문까지 능력껏 다녀 오기로 했다.

걷다 보니 강은덕 선생님과 이번에 서울삼육고로 발령이 난 김정혜 선생님이 동행이 되었다.  

과거 한삼의 '여사여모'가 한데 뭉치게 된 셈이다.

다른 학교로 간 윤종 선생님까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게다가 여기는 예전에 '여사여모'가 하루 날을 잡아 단양 도담삼봉을 거쳐 왕건 세트장을 보려고 왔던 바로 그 장소가 아닌가?

그 때가 벌써 10년 전.

입구부터 몰라보게 바뀌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내고 양 옆으로는 보도 블럭을 깔았다.

경상도에서 과거 보러 한양에 가던 옛길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였다.

입구 오른쪽에 큰 석상이 보이는데, 체격 좋은 중년 남자의 형상이다. 

이 지역 출신의 인물이려니 하면서 누구를 조명해 놓았는지 궁금하여 다가가 보니 막연히 '선비의 상'이란다.

다소 허탈했다.

딱히 기릴 인물이 없다면 청운의 뜻을 품고 과거 보러 가는 서생의 모습이 이 위치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상가 지역이 끝나고 옛길박물관을 지나자 주흘산, 조령산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 온다.

잔설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 산을 바라보며 탁 트인 공터 사이로 난 길을 걷다보니 조령 제1관문인 주흘관이 나타난다.

 

 

 주흘관 (제1관문)

 

 

주흘관을 지나자 길가에 선정비, 불망비, 송덕비가 비군(碑群)을 이루고 있다.

그 중 색다르게 붉은 색을 띠는 비가 있기에 살펴보니 '홍로영 현감 철비'. 무쇠로 만든 비석이다.

 

 

 

예전에 사극 '태조 왕건' 등을 촬영한 오픈 세트장 옆을 지났다.

2000년 처음 개장했을 때는 관람객이 많아 지자체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는데, 오늘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구경도 관객이 많아야 할 맛이 있지. 저기에 갔다간 우리가 구경거리가 되겠군.

그냥 스쳐 지나면서 우리들이 공유한 추억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군.

 

 

저 바위는 무슨 모양이지?

악어? 아나콘다?

기름을 짜는 기름틀을 닮아 '지름틀 바우'란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

 

 

 

마사토가 깔린 길을 한담하며 걷는다.

애초에 3관문까지 걷겠다는 야무진 계획 따위는 없었다.

가는 데까지 가다가 버스 승차 시간이 되면 언제든지 돌아서기로 했으니 여유 있는 걸음새다.

 

자작나무 군락을 지났다.

"어 자작 나무네."

뒤에 오던 이봉학 선생님이 정진웅 선생님에게 묻는다.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

"자작나무인가요?"

"어떻게 자작나무를 알지?"

"그냥 생각나는 나무이름이 그것이라서 말했어요. 난 사실 자작나무가 뭔지도 몰라요."

"쳇, 내가 방금 말했잖아. 그걸 들었으니 그 단어가 튀어 나왔지."

" 아, 그런가요?"

역시 정진웅 선생님답다.

 

 

 

돌담으로 에워싸인 '조령원터'가 남아 있다.

원(院)이란 지금의 여관과 같았다.

권근의 기문(記文)에 의하면 나라의 들에는 10리 길에 여(廬-초막)가 있고 30리 숙(宿-여관)이 있었으며, 후세에는 10리에 장정(長亭-쉬는 집) 5리에 단정(短亭-쉬는 작은 정자) 하나씩이 있었는데 모두 나그네를 위한 것이었다.
나라에서 원(院)을 두고 상인과 여행자에게 혜택을 주되 공과 사의 구별, 상과 하의 구별을 분명히 하였다. 산골짜기 외딴 곳에서 해는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고 사람과 말은 지치고 범이나 표범의 두려움, 도둑의 염려 등 길손의 걱정은 이에 더 할 것이 없었을 것이다. 조령산성 안에 조령원(鳥嶺院)과 동화원(桐華院)이 있고 현의 서쪽 15리인 이화령 아래 요광원(要光院)이 있었으며 하늘재 밑에 관음원(觀音院)이 있고 현의 북쪽 4리에는 화봉원(華封院)이 있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모두들 웃는 걸까?

 

 

원터 한 복판에는 원의 모습을 재현한 초막이 있다.

 

 

 

 

 

교귀정

 

교귀정은 문경읍 상초리 조곡관(鳥谷關)과 주흘관(主屹關)의 중간지점인 용연(龍淵-龍湫)위에 있다.

체임(遞任)하는 신구관찰사(新舊觀察使)의 교인처(交印處)로 성종조 신승명이 건립했다.

유지(遺址)와 김종직(金宗直)의 시(詩)가 전해 온다.

 

 

 

 

 

 

용추(龍湫)

 

용추는 교귀정 새재 길 옆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시인(詩人)이나 묵객(墨客)이 즐겨 찾는 경승지(景勝地)이다.

『동국여지승람』 「문경현편(聞慶縣篇)」에 의하면 새재 밑의 동화원 서북쪽 1리에 있다.

폭포가 있는데 사면과 밑이 모두 돌이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으며, 용이 오른 곳이라고 전한다.

 

 

용추의 경치를 읊은 퇴계 이황의 시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