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2011년 3월.
교내 메신저에 주말 농장 희망자 신청 공고가 떴다.
학교내 실습지 중 남은 땅은 신청자가 한 두럭씩 농사지을 수 있다.
푸성귀는 친정에서 넘치도록 제공해 주기 때문에 늘 무심히 넘겼는데,
금년에는 살짝 구미가 당겼다.
한번 도전해 볼까?
당장 회신을 보냈다.
'신청합니다. 초보니까 곁눈질하며 배우게 자리 배정 잘 해 주세요.'
신청자는 8명. 자리를 배정해 주는 것은 없었다.
"저기부터 저~기까지니까 원하는 곳을 선택하세요."
그래 놓고 세월만 보냈다.
다른 사람들이 농사를 시작하면 따라 하려고 기다렸다.
4월 초, 사택 식구들은 좀 떨어진 도림초등학교 옆에 있는 학교 땅에 감자를 심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가는 길에 바라보면 딱 한 두럭만 땅을 일구어 놓았을 뿐 아무도 손을 대지 않는다.
퇴근 길에 종묘상 앞에 씨감자 박스가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감자를 심을 철인가 보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멋대로 할란다.
4월 17일 일요일.
낮에 교장 선생님 아들 결혼식이 있고, 오후에는 친구들과 여의도 벚꽃 축제에 가기로 한 날이다.
'서두르자. 오전 10시까지는 시간이 있다.'
아침 일찍 종묘상에 들러 씨감자 1관, 상추 모종 한 판(50개), 부추씨 한 봉지를 샀다.
우선 토평동 김 원장님 블루베리 농장으로 가서 미리 거름을 넣어 둔 자리에 감자를 심었다.
그 밭에는 지난 가을에 비닐을 씌워둔 상추가
겨울을 잘 나고 제법 맛있는 잎을 낸다.
학교로 이동하여 남은 씨감자를 심고 부추 씨를 뿌렸다.
상추 모종은 안방 베란다 텃밭에 심기로 했다.
베란다의 화초를 한쪽으로 몰고 상추를 심다보니 절반이나 남았다.
'남은 것은 내일 학교에 학교에 가서 심을 거야.'
밤에 비가 내려 땅이 촉촉했다.
역시 하늘은 나를 돕는구나.
새벽에 눈 뜨자마자 남편을 재촉했다.
상추를 심고 교실 쪽을 바라보니 여기저기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등교 시간이다.
점심 시간에 식당에 다녀 오는 길에 밭을 가리키며 자랑스레 말했다.
"저기 상추 심은 것 보이지? 내가 심은 거야."
그런데 이게 웬 일이지?
상추 모종 몇 개가 뭉개진 것이다.
'아이들이 공놀이하다가 이리로 굴러갔나?'
'아랫 마을 개가 올라와 짓밟았나?'
나중에 텃밭 관련 서적을 읽고 나서야 원인을 알았다.
모종을 심고 나서 물을 주어야 했던 것이다.
비가 온 후라 땅이 젖어 있으니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살아준 모종들이 고맙다.
상추는 두세 개만 물러지고 생기를 찾았다.
치커리 모종을 사다가 빈 자리에 심었다.
문제는 감자와 부추가 싹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일 주일
이 주일
...
삼 주일
씨 값만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 인공 토양에 심은 상추는 화초보다 예쁜 모습으로 잘 자라고
스티로폼 박스에 심은 부추도 실낱 같은 싹으로 흙을 들고 돋아 나오는데...
누군가가 땅이 메말라 싹이 안 트는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일과후에 페트병에 물을 받아 차에 싣고 밭으로 가는 날이 잦아졌다.
다시 주말을 보내고 밭에 가니 감자싹이 돋기 시작했다.
잘 자라라고 물에 산야초를 섞어 주는 정성도 기울였다.
감자는 북을 돋워 주어야 밑이 든다고 해서 간간이 김도 매고 북도 돋워주었다.
5월 30일
초보 농부는 봄날의 흔적을 남겨두려고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일단 학교 텃밭을 찍어 둔다.
감자에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묵. 찌. 빠.
친정에서 푸성귀가 많이 와서 상추를 묵혀 두었더니 흙이 안 보일 정도로 무성했다.
지나가던 박 장로님 내외가 그냥 두면 못 쓴다고 잎을 따주셨다.
두 집이 나누었는데도 한 바구니 가득하다.
심하게 이발한 직후의 모습이다.
이틀만 지나도 또 한 봉지 뜯을 수 있게 자란다.
밭에서 만나는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만하다.
상추 모종을 절반은 베란다에 심고
절반은 밭에 심었는데
같은 모종인데도 베란다에서는 연녹색, 밭에서는 붉은색이다.
햇빛이 주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감자와 상추 사이에서 부추도 싹을 틔웠다.
고추 모종 18개를 사다 심었다.
지주대를 꽂아야 한다고 하니까 남편은 주변에서 삭은 나뭇가지를 꺾어다 꽂았다.
곧 죽어도 폼이 나야 한다.
며칠을 인터넷을 뒤지며 지주대를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남편 몰래 종묘상에서 하나에 600원씩 주고 샀다.
지주대를 사며 비닐끈을 얻었는데 아직 묶지는 못했다.
벌써 꽃도 피고 열매도 달렸다.
지주대가 두 개가 부족하다.
이것은 원래의 모습대로 남겨 두었다.
초보는 티가 난다.
고추 모종 사이 간격이 너무 좁다.
나중에 다 자랐을 때를 생각해서 간격이 60cm는 되어야 한단다.
친정에 부탁해 뿌리째 가져다 심은 미나리도 뿌리를 잘 내렸다.
벌써 몇 번 잎을 뜯어 겉절이도 하고 채소샐러드도 했다.
땅콩 모종도 심었다.
산 중턱에 있는 밭이라 평지보다 기온이 낮아서인지 다른 밭에 비해 생육이 늦다.
어디서 굴러온 호박일까?
4월 넷째 주에 사다 심은 호박 모종은 모두 죽었다.
호박은 저온에 약하다고 한다.
모종 가게에서 5월이나 되어야 심는 거라고 했건만...
호박 한 포기가 땅콩 모종 옆에 붙어 자라기에 옮겨 심었다.
쑥쑥 자라거라.
왼쪽 아래에는 들깨 모종을 심을까, 방울토마토를 심을까
일단 거름만 넣어 갈아 놓았다.
엄마표 머위도 심었다.
엄마가 미나리와 머위를 가져다 주던 날
기다리던 전화가 울리기에 방에서 거실로 전화 받으러 뛰어가다가
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인정사정 없이 고꾸라졌다.
대리석 바닥에 이마를 부딪힌 것이다.
심각한 일이 벌어질까 겁이 났다.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정말 내 머리는 돌보다 단단하다.
머위는 토평동에 몽땅 심었다가 몇 뿌리만 다시 학교에 옮겨 심었다.
가까이에 있어야 뜯어가기에 좋을 것이다.
두 번 이사를 시켜서 그런지 비실비실하다가 이제 겨우 살아났다.
한낮이라 잎이 늘어진 것이지 아침 저녁으로는 생생하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는가.
벌써부터 머위가 밭 고랑을 가득 메운 풍경이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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