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가족과 함께

여수(麗水), 물빛 고운 항구 도시 3. 충무공의 얼이 서린 진남관(鎭南館)

달처럼 2011. 10. 20. 10:03

 

 


여수시 군자동 472번지에 위치한 진남관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진해루 터에 세운 75칸의 대규모 객사이다. 객사는 성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나란히 세워지는 중심 건물로, 중앙 정청 내부 북쪽 벽 앞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함을 두고,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날마다, 또 나라에 국상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 이 전패에 절하는 '향궐 망배'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지방 관리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시 듯 선정을 베풀 것을 다짐하던 곳이다.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鎭南館' 이라고 한 이 건물은 1664년 절도사 이도빈이 재건, 171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이제면 수사가 다시 지었고, 이후 크고 작은 수리를 거쳤으나, 1718년 중창이 오늘날 건물의 뼈대가 되었다.
조선 후기 전라좌수영 내에는 600여 칸으로 구성된 78동(棟)의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남관은 정면 15칸(54.5m), 측면 5칸(14.0m), 면적240평의 대형 건물로 합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과 몇 안 되는 우리 나라 대표적 목조 건축물이다.
직사각형 땅에 2줄로 반듯하게 기단을 쌓고 가장자리는 직사각형 다듬돌로 돌렸으며, 막돌(자연석) 덤벙 초석 위에 민흘림의 원형 기둥 68개를 세웠는데, 막돌 초석에 맞게 기둥뿌리의 밑둥 다듬어 기둥을 단단하게 유지시키려는 고급 기술 그랭이 수법을 사용하였다.

진남관의 규모가 장대하여 지붕쪽에서 내려오는 힘이 너무 크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하여 기둥과 기둥을 가로지는 창방(昌枋)으로 연결하였고,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한 주심포 양식으로 처리하였다. 또한 기둥 위 주심 도리를 중심에서 공포 바깥쪽으로 2개의 가락(외 2출목)을 낸 점, 내부에 다시 2줄로 큰 기둥을 세워 대들보를 받치도록 한 점, 건물 앞뒤 양쪽 끝칸(퇴칸)에 퇴보를 둔 점은 모두 지붕의 무게를 분산시키고자 한 것이다.

장대한 건물의 지붕 측면을 박공모양으로 처리 한 후 그 밑을 잇고 지붕 면을 처마까지 경사지게 이음으로써 '八'자와 비슷하게 만든 팔작 지붕은 이 건물의 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또한 대들보는 용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으며 색이 바래기는 했지만 정성스럽게 단청한 흔적이 남아있다.

순종 5년(1911)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교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53년 진남관 보수 공사 도중 1718년 이제면 수사가 쓴 현판이 발견되었다.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 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국보 제 304호로 지정되었다.

 

 

앞에서부터 망해루, 진남관 임란 유물 전시관(망해루 뒤 아치형 출입구), 통제문, 진남관

 

 

 

 

 

 

 

 

이 충무공의 수군들이 야간 조련 시 불을 밝히기 위해 사용했던 석주화대(石住火臺)

이순신 장군 당시의 유물로 4기 중 2기만 남아있다.

 

 

 

진남관 내부 마루와 기둥

 

 

금오도에서 자란 소나무를 해상운송해서 사용했다는 진남관 기둥

 

 

수많은 풍상을 겪어낸 진남관 기둥에서 조상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

  

 

미소가 닮은 안 사장님 내외분

  

 

 

모 라디오 방송의 시사 코미디를 연상시킵니다. 시.선.분.산.

 

 

 

 

 

진남관 임란 유물 전시관

 

 

장정 키만한 이 순신 장군의 칼

장군의 유품 진품은 현충사나 박물관에 있고 여수에는 복제품만 있다고 여수 사람들은 아쉬워한다.

 

 

거북선 내부 모습을 축소 제작한 모형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좌수영 맛집거리로 향한다.

長考 끝에 결정한 맛집인 대성식당에서 여수의 별미인 서대회를 주메뉴로 하고

이 식당만의 자랑인 삼치회를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