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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를 매며>,<배를 밀며> - 장석남

달처럼 2012. 6. 10. 10:37

 

배를 매며


#  시 전문 읽기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일도 없으면서 넋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


# 핵심 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제재 : 배를 매는 일이 표면적 제재이나 이면적 제재는 사랑이다.

3. 주제 : 사랑의 본질

4. 구성 

 1연 : 사랑은 갑자기 조용히 찾아온다.

 2연 : 사랑은 의지의 차원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의 차원이다.

 3연 : 배(인간존재)의 모습

 4연 : 사랑이란 배를 매는 일이다.

 5연 : 빛 가운데 일렁이며 떠 있는 배(사랑에 빠져 있는 인간존재의 모습)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밧줄로 배를 매는 일(배를 정박시키는 일)을 말하고 있으나 이면적으로는 사랑의 본질을 노래하고 있다. 즉 사랑이란 갑자기 날아온 밧줄로 배를 묶는 것처럼 그렇게 갑작스럽고 조용히 이뤄지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므로 ‘배’란 시어의 상징적 의미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배’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인이 의도적으로 사랑의 본질이란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상징적 시어이다. ‘배’의 이미지는 안정되고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늘 출렁이고, 때로는 고단한 항해를 해야 하며, 항해 중에는 정박을 동경하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배’란 바로 삶이라는 바다를 끝없이 항해하는 유랑자로서, 안락함과 정착을 동경하기도 하는 우리 인간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4연에서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란 시구는 무엇을 말하는지 밝히는 게 중요하다. 배를 맨다는 것은 그동안 방황하며 유랑하던, 즉 어떤 사랑의 대상을 만나기 전의 유동적이던 상황이 대상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름, 빛, 시간이란 시어의 공통점은 고정인 아닌 유동적인 흐름이다. 한 인간이 사랑의 대상을 만나 그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그동안의 유동적인 상황이 끝나고 그 대상과 묶여지는 것을 의미하며 혼자일 때의 상황과는 모든 게 달라진다. 즉,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개체와 개체가 결합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개체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사물, 심지어 시간까지도 함께 공유하게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5연에서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을 떠 있다”란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배가 끈으로 묶였으므로 빛을 받으며 떠 있을 수밖에 없긴 한데 그런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랑에 빠진, 두 개체가 사랑의 관계로 매여진 상황에서 갖는 인간의 심리상태를 암시하는 구절로 볼 수 있다. 즉, 사랑하는 동안에 인간은 설레는 감정을 숨길 수 없거나, 시련과 고난에 봉착하는 수도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다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배를 밀며


# 시 전문 읽기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 핵심정리


1. 갈래 : 자유시, 서정시

2. 제재 : 출항 , 사랑의 이별

3. 주제 : 이별의 본질

4. 구성 

 1연 : 배를 바다로 밀어낸다(이별의 모습)

 2연 : 부드러운 이별 (손쉬운 이별)

 3연 : 애써 떨쳐내는 슬픔

 4연 : 실연의 상처와 상처의 소멸

 5연 : 이별 후의 외로움과 그리움


#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위의 <배를 매며>와 짝을 이루는 시로 볼 수 있다. 그 연속선상에서 이 작품을 이해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앞서 살펴본 ‘배를 매는’ 것이 두 개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묶이는 것이라면 ‘배를 밀어낸다’는 것을 이별을 의미한다는 것을 쉬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별은 약간의 의지만 있으면 손쉽게 이뤄지는 것이며 그 슬픔도, 상처도 애써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1연~4연) 그러나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후 왠지 밀려오는 허전함, 외로움, 간절함 그리움을 내 의지로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다는 말을 시인은 하고 있는 것이다.(5연)


이 시에서도 배는 사랑의 대상인 인간존재를 상징한다. 5연에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도 밀어내 보냈는데도 내 가슴 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시인소개


장석남(1965~   )

- 시인,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전임강사

- 1965년 8월 3일, 인천 옹진 출생

- 서울예술전문대학, 인하대학교대학원 졸

-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맨발로 걷기' 로 데뷔

- 1992년 11회 김수영문학상(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수상

- 1999년 44회 현대문학상(시, '마당에 배를 매다') 수상

- 시집,『젖은 눈』,『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출처 : 기다림114
글쓴이 : 기다림114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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