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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

달처럼 2010. 12. 15. 13:20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자녀교육 분야의 베스트셀러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작가로 잘 알려진

여성학자 박혜란의 에세이집.

책에 실린 산문들은 '여자'와 '나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소재삼은 것이다.

즉 여자가 나이먹는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주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 것이며 나 자신에게는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가를 돌아본 글이다.

지은이 자신에게 '나이듦'이란 질병이라는 폭력적인 형태로 다가왔다.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궁과 난소를 잃게 만든 여자의 질병 때문에

지은이는 비로소 제 나이를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이 아파지고 피부가 늘어지는 '나이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모습에 즐거움마저 배어난다.

편안하고 곱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의 미덕을 재차 상기하며,

남들이 위해주는 혜택까지 누리게 되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 목차 ]

1. 여자의 시간은 잘도 흐르네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 나는 564 아줌마 / 60대, 그 고단한 초상 / ( )에 갇힌 삶 / 해 놓은 것도 없이

2. 세상이 달리 보인다
지하철 풍경 / 사소한 것에 대한 분노 / 텅 빈 집

3. 돌아오는 남편들
남편들, 집으로 향하다 / 겨울 바닷가에서 / 별 걸 다 행복해하는 여자 / 참 미련들 하네

4. 아직도 어머니를 모른다
"내가 와 이리 오래 사노?" / 아직도 어머니를 모른다 / 고향 만들기 / 어떤 이산

5. 여자들은 아픈 데가 많다
몸의 반란 / 세상이 달리 보이네 / 여자들은 아픈 데가 많다

6. 자식을 손님처럼
시어머니 프리미엄 / 떠나보내기 / 며느리가 어떠세요 / 시집과 친정 / 자식은 손님

7. 노전생활? 노후생활?
돈이 효자? / 친구 이야기 / 누구하고 살까 / 휴대폰과 인터넷 / 도심을 못 떠나는 이유 / 버리자, 또 버리자

8. 길 위에서
다시 연변에 가다 / 도요나가에서의 닷새 / 아카디아로 가는 길


[ 책속으로 ]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나보다 한참 젊은 여성들로부터 날씬하다든가 젊다든가 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그게 아무리 입에 발린 치레라고 해도 기분이 꽤 괜찮은 노릇이다.

"아유, 그 거짓말 참 듣기 좋네."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입이 헤벌쭉해지고 축 늘어졌던 사지에 파르르 생기가 오른다.

(이 쯤 되면 나도 갈 데 없는 공주병 환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얼마 전 일반버스에서의 경험은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팍 전 파김치 상태로 의자에 늘어져 있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몸을 내 쪽으로 숙여 오며 속삭였다.
"이 적씨 어머니시죠?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이 적(나의 둘째 아들로 본명은 이 동준. 대학 4학년 때 가수로 데뷔했다)의 열렬한 팬이라고

자기 소개를 한 그 여성은 스물 여덟 살이며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그 또래답게 환한 표정에 당당한 태도가 돋보이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5분 남짓 동안

내 귓속에서는 계속 '곱게 늙었다.'는 말이 맴돌았다.

아니, 그냥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라고 끝내면 어때서 굳이 '늙었다.'는 말을 보태는 거지?

괘씸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중략>…

시간이 흐르면 싫어도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나이듦은 늙어감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늙어 가면서 왜 그렇게도 늙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할까.

가까워져 오는 죽음이 두려워서일까.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젊음을 찬미하는 데 너무 바빠서 늙음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우도 못할 만큼 인색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면 의학의 기술을 빌리건 심리적 최면을 걸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젊음을 자꾸 늘여 가다 보면

어느 날 늙음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꿈꾸는지도 모른다.

늙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환상적인 꿈.
--- pp.19~21

아무튼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고 심지어는 죄라고 배워왔다.

더구나 여성의 경우는 훨씬 더 심했다.

그 많고 많은 이야기책들은 한결같이 젊고 예쁘고 착한 소녀를 괴롭히는 늙고 못생기고 못된 여자들을 그려왔으니까.

백설공주도 늙으면 마녀가 된다! 여자들이여, 늙지 말지어다.
때론 자신은 나이에 초연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이 늙어감은 인정하지 않는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는 젊다.' 도대체 늙음이 뭐길래.
결국 늙음을 맹렬히 부정하느라고 정작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못하면서 우린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통고받는 순간의 그 느낌이라니.

그 충격적이고도 착잡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p. 21

 

우리 어머니 세대에 비하면 한결 잔잔한 파도였을지 모르지만,

우리들 564세대 - 50대, 60년대 학번, 40년대생 -  아줌마들은 정말 격랑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다보니

어느덧 노년의 입구에 떠밀려 오게 되었다.

 

564 아줌마들의 일차 목표는 현모양처였다.

자아실현은 이기적인 행위로 여겨졌고 그들의 모든 에너지는 가정 안에서 발산되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편안한 노후가 기다릴 거라는 믿음은 정작 그 때가 다가오자 산산이 부서져 갔다.

현모양처는 더 이상 여성의 유일한 삶의 목표가 아니었다. 최고의 가치는 자아실현이었다.

'나'를 찾으라는 주문은 격려가 아니라 질타로 다가왔다.

살아갈 날은 까마득하게 남아 있는데....

564 아줌마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은 너무 길고 할 일은 너무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막막해진다.

아이들은 너무 빨리 커 버리고 말았다. 둥지는 어미도 모르는 새 비어 버렸다.

노는 것도 가끔 해야지 줄창 놀기만 하니까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찾아낸 일거리.

그건 다름 아닌 '자녀 애프터 서비스'라는 프로젝트이다.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에도 자신의 관할권 안에 두고 30년 동안을 보살핀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 pp. 25~28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구호가 요란한 게 언제 적부터인데 어찌 된 셈인지

딸들은 결혼시켜놓고도 죽을 때까지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변했고 며느리는 까탈진 상전이 되었다.

손자들은 비싼 장난감이나 용돈을 미끼로 해야 겨우 가까이 온다.

 

60대 여성들의 남편들은 또 어떤가. 왕년에 얼마나 출세를 했건 그들은 이제 제 손으로 라면 하나 끓여 먹을 줄 모르는

철저한 생활 무능력자들이다.

이러니 팔자 좋은 60대 여성은 유산 많이 남기고 남편이 일찍 죽어 준 년이란 농담이 힘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나.

--- p. 34

 

사람은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없다. 내 이름이 쓰이는 한 그 옆에는 괄호가 쳐지고 숫자가 매겨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세상이 값을 셈하는 대로 자신의 나잇값을 저울질하며 살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에게 팔 것도 아닌데 내 나잇값은 내가 마음대로 매기면 그뿐이다. …<중략>…

세상이 매겨 주는 나잇값이 잘못되었으며 같은 나이에도 얼마든지 값을 다르게 매길 수 있다.…<중략>…

성 역할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연령 역할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 p. 39

 

 


사노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정의 대상이 될 때도 생기나 보다. 전 같으면 남에게 동정의 대상으로 비친다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해서 펄쩍 뛰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니?하고 빙그레 웃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러고 보면 기가 꺾였다는 지적은 정확한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크게 서글프지는 않다. 몸이 안 좋아지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변화가 단순히 몸 때문인지 아니면 그 사이에 또 몇 년 나이가 들어서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난 치열하게 살지 않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다고 크게 이름을 남기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조그맣더라도 세상에 왔다간 자취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그런 종류의 치열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조용히 뒤돌아 보니 나는 치열함과 분망함을 혼돈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 인생은 그저 분망하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격 자체에 한 가지를 붙들고 매진하는 어떤 열정 같은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해야 할까. 제발 참으라고 몸이 막고 나선다. 나를 위해서 좀 느슨하게 살아 달라고. 꼭 무언가를 남겨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 <중략> …
내가 몸이 안 좋다고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자 다짜고짜 '아, 이젠 좀 인간적이 되었겠네.'라며 신난다는 듯이 크게 웃던 친구가 있었다. 전에는 너무 힘이 넘쳐서 비인간적으로 보였다나 뭐라나. 나를 만나면 괜히 기가 죽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며칠 동안은 되게 기분이 나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수긍이 간다. 나 역시 여전히 혈기왕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나하고 다른 인종처럼 보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진다는 게 반드시 나쁘기만 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한 복판으로 뚫고 들어가 치열하게 사는 대신 멀찌감치 물러나서 조용히 구경만 해도 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좋다. 또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건성으로가 아니라 진짜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좋다.
--- pp. 136~138

[ 출판사 리뷰 ]

늦깍이 여성학자로, 베스트셀러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저자로, 인기 가수 패닉의 멤버 이적의 엄마로 유명세를 치르며 숨돌릴 틈 없는 바쁜 삶을 살아왔던 저자 박혜란이 5년만에 '여자의 나이와 몸'이라는 화두를 들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나이듦에 대하여'란 다소 생소하고 낯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여자가 나이 들어가며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몸의 변화, 생각의 변화, 관계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느낌을 담은 에세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저자 또한 자신의 '나이듦'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싫어했고 나이와 관련되어 생겨나는 문제들도 자신과는 동떨어진 거라고 외면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생 속 한`번 썩이지 않던(오히려 너무 튼튼해 불만이었던) 몸이 반란을 일으켰다. 응급실에 실려가 무려 일주일 동안 수혈을 받은 후에야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몸의 반란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나이듦'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되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신을 둘러싼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일까? 나이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몸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들, 새로운 느낌과 사고방식,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이 그를 채웠다.

자신의 이야기,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가는 이야기
그렇다고 그가 이 책에서 풀고 있는 내용이 거창한 철학적 주제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작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수다에 가깝게 자신의 이야기를 특유의 생기 넘치는 문장으로 맛깔지게 풀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행간에 깔아놓았듯 이번 에세이에서도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아마 밝히고 싶지 않을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으며, 또는 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나이듦의 일상사와 그 성찰에 관해 말한다.

자신을 속박하는 늙음에 대한 부정적 고정 관념을 깨야
누구보다도 고정관념을 깨며 살아가는 데 앞장서 온 그가 이 글에서 강조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늙음'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늙음은 추함이고 악함이고 약함이라는 고정관념이 유난히도 강한 우리 사회에서 그 고정관념을 깨는 방법은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바로 나이 들어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그냥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나이 들어가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이 정한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만의 나잇값을 살아가는 용기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성 역할을 통해서 성 차별이 줄어드는 것처럼 다양한 연령 역할을 통해서 연령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놓치지 않는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나이 든다는 것이며 지금도 쉼 없이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그래서 그것은 외면하고 무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추하고 안 좋은 것이며 약한 것이라는 늙음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 뒤에서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외로워하는 우리들의 나이 들어가는 삶… 이제껏 누구도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너무도 솔직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풀어놓은 이 책에서 약한 것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을 느꼈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 미디어 리뷰 ]

늙는게 뭐 그리 대수냐

지난 2년간 박혜란 아줌마(55)에겐 썩 좋지 않은 일이 많았다. 남편의 사업실패가 있었고 맏언니같던 큰동서가 먼저 갔다. 큰동서 49재날 친정 어머니가 돌아 가셔서 임종도 못했다. 무엇보다 큰 사건은 자궁과 난소를 들어낸 일이었다. 그녀는 인생이 예측가능하다고 믿었다. 삶 곳곳에 놓였다는 함정은 남의 것이라 생각했었다. 서울대를 나왔고 한때 유수의 잡지사에서 기자생활을 했으며 아들 셋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유명한 엄마이자 잘 나가는 여성학자. 그 똑똑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던 이 여자에게도 남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늙었다. 이제 늙었다. 그런데 나이들고 몸이 안 좋아지니 세상보는 눈이 바뀌더란다. 박씨가 이번에 낸 수필집 『나이듦에 대하여』는 지난 2년간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토대로 쓴 생활 에세이다. 그녀는 기자와 만나 마치 옆집 아줌마처럼 나지막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로 수다를 풀어냈다.

“아줌마들 3대 질병이 자궁 허리병 홧병이야. 이번에 자궁 수술하면서 보니까 왜 그리 ‘빈궁마마’들이 많은지. 산후조리 잘못해서 허리병은 기본이고 고부관계가 주 원인인 홧병은 결혼 10년차나 40년차나 똑같애.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 하지만 여자들은 죽을 때까지 병끼고 산다고 보면 돼.”

그녀의 글 곳곳에는 신산(辛酸)한 삶을 살았던 이 땅의 50, 60대 아줌마들의 얘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의 삶은 대하 드라마다. 해방 전쟁 가난…그속에서 애낳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시부모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훌쩍 늙어버린 지금, 자식들과는 아예 대화가 안 된다. 환갑이 넘어서까지 80 ,90 넘은 시부모 모셔야 하느냐 한탄하면 효자로 소문난 남편은 일상적인 히스테리라며 무시해 버린다. 너그러운 시어머니이고 싶지만 요즘 젊은 것들은 해도 너무한다. 남편은 또 어떤가, 왕년에 출세를 했건 말건 제 손으로 라면하나 끓여 먹을 줄 모르는 생활 무능력자들. 오죽하면 팔자좋은 60대 여자는 유산많이 남기고 남편이 일찍 죽은 년이란 농담까지 나왔을까.’

박씨도 요즘 은퇴한 남편과 함께 지낸다고 한다.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제2의 신혼. 잉꼬는 못돼도 비둘기는 될 줄 알았는데 그게 맘대로 안된단다.

‘남편이 너무 낯설다. 그는 내가 알고 있던 남자가 아니다. 너무 시시해서 말하기도 창피한, 점심에 라면 끓여 먹을까 빵 먹을까 이런 것 같고도 금방 기싸움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녀의 힘은 이런 중년의 투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글 곳곳에는 아직도 세상에 궁금한 것이 많은 젊은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스스로 경험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혜와 자신감이 배어있다. 그리하여 오직 젊음만이 찬미되는 이 시대에, 늙음은 추하고 악하고 약함이라고 무시당하는 이 시대에 그녀는 내적으로 성숙한 어른만이 들려줄 수 있는 관용과 여유를 담아냈다.

‘사랑도 미움도 다 날려 버리고 그저 그냥 함께 사는 남편이 괜찮아 보일 때가 많다. 좀 썰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남편이 정치인도 아니고 고관대작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돈이나 권력은 너무 많아도 불행에 가깝다.…그렇다고 다음 세상에서 지금 남편을 또 만나고 싶으냐는 질문은 사절.’

‘산다는 것 자체가 늙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늙음을 맹렬히 부정하느라고 정작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준비는 못했다. 하지만 노전(老前)이 따로 없듯 노후(老後)도 따로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나도 남은 자의 삶은 지속된다. 왜 사느냐는 물음은 필요없다. 그냥 살아가는 것일 뿐.’

‘몇살에는 결혼을 몇 살에는 출산을 하는 식으로 나는 나이에 맞춘 삶을 살았다. 그러다 어떻게 나이를 먹을지 생각하며 살자고 서른아홉에 대학원 들어가 공부한다 강연한다 원고쓴다 살림한다 정말 열심히 살았다. 쉰 넘으니 몸이 말을 걸어왔다. 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이제야 나이듦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눈을 얻었다.’

박씨의 글들은 지난 98년 중반부터 최근까지 여성신문에 게재됐다. 친구들은 ‘나이든게 뭐 자랑이라고 떠들어대냐’고 타박을 주었지만 오히려 10대 소녀들이 재미있다고 동감을 표시해와 놀랐다고 한다. 창피하고 쑥스럽지만 먼저 산 여자 선배로서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갈 삶에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감히’ 책으로 묶어 냈다고 한다.

--- 동아일보 책의향기 허문명 기자 (2001년 12월 1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