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순위엔·펑유 부부 '소년…' 전 내달까지
"퉁!" 소리와 함께 건물 안에서 공이 날아와 유리벽에 부딪혔다. 무심코 지나쳐가던 행인들이 깜짝 놀랐다. "공에 맞는 줄 알았어요. 유리가 있는 줄 몰랐거든요." 순간적으로 얼굴을 가린 유미나(36·회사원)씨가 말했다.
5일 오후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삼청 전시장. 전시장 안에서 축구복을 입은 소년이 끊임없이 입구쪽 유리벽을 향해 공을 찼다. 전시장 입구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이다. 전시장 내부가 어둡기 때문에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공이 날아온 건지 알 수 없어 당황하게 된다. 이 퍼포먼스는 다음 달 9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중국 부부 작가 순위엔(39·남편)과 펑유(37·아내) 개인전 '소년 소년(少年 少年)'의 일부다.
매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갤러리 휴관일인 월요일은 제외) 고용된 퍼포머 1~2명이 특수강화유리로 만든 벽을 향해 공을 찬다. 전시장 내의 고풍스러운 소파에는 옷을 잘 차려입고 얼굴 대신 바위를 얹은 6명의 성인 남녀가 근엄한 자세로 앉아 공놀이를 관람한다. 얼핏 보면 진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리콘 인체 모형이다. 바위는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로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공을 차며 놀던 어린 시절이 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서 생각이 굳게 되죠. 어린 아이들에게는 공놀이를 하는 일상조차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어른들은 엄연한 예술작품인 퍼포먼스조차 예술이라고 느끼지 못하죠. 작품의 어른들이 머리에 돌을 얹고 있는 것은 완고한 그들의 인식을 상징합니다."
이 작업에서 미술관 밖을 지나치던 행인은 자연스레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돼 '관객'이 된다. 전시장의 '돌머리 인간'들은 사실 '작품'이지만 공놀이를 관람하는 '관객'이 되기도 한다. 작가들의 작업 의도는 사람들에게 '대체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작업의 '영혼'은 '축구를 하는 소년'이지만, 컬렉터들은 '소년'이 아니라 돌머리 작품을 구입하겠죠. 영혼이 빠져나갔는데도요."
- ▲ “뻥!”소리와 함께 축구공이 전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5일 오후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삼청에서 축구복을 입은 퍼포머가 전시장 입구 유리벽을 향해 공을 차고 있다. 머리에 돌을 얹은 채 앉아 있는 전시장 사람들은 중국 부부 작가 순위엔과 펑유의 설치 작품이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베이징 중앙미술학교 동문으로 10년 전 결혼해 함께 작업하고 있는 이 부부 작가의 특기는 엉뚱하면서도 코믹한 발상이다. 2006년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에서 열린 비엔날레 때는 강에 비틀스 멤버를 닮은 인체 모형을 둥둥 띄워놓아 주민들이 놀랄 것을 염려한 경찰의 제재를 받은 적도 있다. 결국 강에서 마네킹을 철수시킨 이들은 한술 더 떠 빌린 트럭에 물에 젖은 인체 모형을 싣고 리버풀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원래 '옛 시절은 끝났다'는 걸 상징하려고 강에 비틀스, 혹은 노인을 닮은 인체모형을 빠뜨려 놓은 거예요. 그런데 경찰이 그걸 걷어가 버리면 우리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잃은 거잖아요. 그래서 아예 트럭에 작품을 싣고 시가행진을 한 거죠."
이번 전시에서는 퍼포먼스 작업 외에도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일제히 따라 울기 시작하는 개구리들을 촬영해 몰개성 시대를 풍자한 영상작품 '최초가 있는 한' 등도 나온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들이 되물었다. "예술이 뭔지 진작에 알았으면 우리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