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팔자 도둑질은 못 하는가 보다.
인생 3라운드를 꿈꾸었는데,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난 주에 첫 출근한 날.
학생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밝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수업하면서도 힘든 줄 모르겠고
오히려 교사로 살아온 내 평생이 참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렇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출근 3일 째 되던 날.
교장, 교감 선생님이 조용히 옆 방으로 불러 명퇴 신청할 거냐고 물었다.
그런다고 했다.
그날 바로 업무포털로 명퇴 신청 공문이 왔다.
받자마자 앉아서 명퇴신청서를 작성해 내려갔다.
서명란만 남았을 때 도저히 그냥 쓸 수가 없었다.
과거에 삼육학교로 옮기기 위해 서울시 공립학교에 사표를 던지던 때가 생각났다.
교장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해서 낸 사표였는데,
막상 후임자가 학교에 오자 말할 수 없이 허탈했다.
아직은 내게 결정 권한이 있지만 일단 서류가 내 손을 떠나면 뒤집을 수 없다.
제출 마감이 12월 7일까지이니 좀더 생각하기로 하고 서류를 덮고 말았다.
며칠 후 남편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장광설이 펼쳐진다.
결론은 계속하라는 거였다.
나의 번민은 그렇다쳐도 남편이 그렇게 나오는 것은 서운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면서 속으로 이번에는 남편 뜻을 따르자고 작정했다.
그런데 학교에는 무슨 염치로 말을 번복하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언제가는 부딪쳐야 할 일이고 시간이 늦어질수록 난처해질 일이다.
월요일 오전에 먼저 교감 선생님에게 말을 꺼냈더니
건강을 우선 생각하라. 그러다가 내년에 또 몸이 안 좋아 병가 내면 학교가 곤란하다고 한다.
그런 것은 각오하고 있다고 하면서
위생병원은 류마티스라고 했지만 그 분야에 전문인 한양대류마티스병원과 김성윤 내과에서 다른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그제서야 자기는 이해한다며 내년도 교사수급 문제로 교장 선생님이 곤란해 하실지 모르겠다고 한다.
바로 교장실에 찾아가 이야기를 꺼냈다.
곤란한 내색 하나 없이
잘 생각했다고,
적당히 활동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하신다.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더니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학교로서도 경험 많은 교사가 남아 있는 것이 좋다고 하신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 동안 쌓여 있던 서운한 일들이 모두 봄눈 녹듯 사라진다.
이 날 따라 날씨도 봄날처럼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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