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두 줄로 요약 집약된, 그 이상 그 이하는 늘 독자의 몫으로 비워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발표 뒤의 반응은 오히려 기대이상이었습니다. 많은 시인들과 독자들이 이 두 줄 짜리, 딱 아홉 글자의 시 한편을 잘도 기억하고는 통쾌, 유쾌, 상쾌한 듯이 웃어댔고, 웃다 웃다가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여럿 있어서 내심 아주 흐뭇했습니다. <문학의 집>이 쓰게 한 소품이고 드라마센터가 쓰게 한 셈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쓰기는 언제 어디서나 감각의 안테나가 접선해주기에 달렸습니다. 시는 궁극적으로 연가 아니면 애가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무슨 시를 어떻게 쓰든, 그 대상 그 주제 그 사물 그 사건...등에 대한 애정(또는 증오)이 없으면 생명으로 태어나 주지 않습니다. 극도의 사랑은 극도의 증오가 될 수도 있어, 증오야말로 지극한 사랑의 다른 모습 일 테니 시가 되고 말구요.
시는 언어예술이되 경제학적인 언어예술이어야 합니다. 한 권의 이야기도 10권 100권의 장편소설도 한편의 시로 집약될 수 있습니다. 압축 언어로 압축서정으로 표현되는 시, 우리는 일찍이 시조라는 3장 6구의 45글자 전후의 시장르를 창조했고, 거의 1,000년이나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하이꾸는 5.7.5 즉 17글자의 시입니다. 우리의 시조나 일본의 하이꾸야말로 침묵에 가까운 시형식이라 할수 있지요.
시는 천상천하유아독존주의를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모든 시의 형식과 내용과 기법의 전복, 가능하다면 혁명으로 태어나는 반골 중의 반골이 아닐까 하구요. 누구의 시와 비슷하다는 것보다 더 모욕적인 평가는 없습니다. 시만이 아니라 그림 조각 음악 영화..등등 모든 창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계통발생과 개체발생이 단절된 완전 새로워서, 배꼽 없는 천애고아, 땅속에서 솟아났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조상과 계보가 없는 새로운 창작이어야 하니까요. 나는 어쩜 이런 평소의 관점이나 시론으로 이 아홉 글자의 시가 써졌는지도 모릅니다. 읽고 기억해서 입안에 누깔사탕처럼 굴러다니게 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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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배경
명동 역에서 내리면 남산의 드라마센터를 지나야 <문학의 집>에 가게 되어있다. 현재 남산의 드라마센터는 한때 내가 국비유학의 의무기간 3년을 근무하던 한국교육개발원 건물이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유정한 정서가 작용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드라마센터건물을 지나며 저절로 표어나 광고문을 읽게되었다.
어느 날 광고문에 <봤을까?>라는 연극제목과 마주치면서, 저걸 시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작정으로 처음에는 제목으로 사용해서 이리저리 써보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또한 우리시가 너무 무겁고 비장하다는 평소의 느낌에서, 무거움과 비장함일수록 가볍고 위티하고 유머스러스하게 쓰고 싶었다. 이런 평소생각으로 여러 번 이렇게 저렇게 쓰고 지우고 거듭 써 봤지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특히 오랫동안 연시를 못 써와서, 연시로 쓰면 어떨까 시도해봤지만, 이 나이까지 살아왔으니 사랑이 어찌 한 두건이겠는가. 혼자사랑 상상사랑 과거사랑 미래사랑 희망사랑 등등, 그 여럿을 한편으로 아우르기에는 나는 능력부족이었다.
더구나 제목을 “봤을까?”해보니, 상황설정이 미스테리 추리극처럼 되어갔다. 하는 수 없이 제목을 내렸다. 그리고는 들어온 무수한 이야기들을 떠올랐다. 길 가다가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시장에서 건널목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다가, 부스스 눈곱 달린 몰꼴로 동네수퍼를 드나들다가 등등.... 얘기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옛친구나 옛 연인과 마주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래오래 웃었던 이야기들을 집약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