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살뜰/문화답사

제비다방

달처럼 2012. 11. 28. 21:56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에 자리한 '제비다방'은

우리 나라 근대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문학가 이상이

3세(1913년)부터 23세(1933년)까지 거주하던 집터의 일부이다.

이상이 살았던 건물은 아니지만 그가 올려다 보던 하늘과 밟았던 땅이 존재하고,

오래된 가옥에 담긴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이 집은 2003년 김수근문화재단(이사장 김원)이 매입하면서 관심을 모았고,

현재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이상의 방' 프로젝트로 함께 관리하고 있다.

내부 시설 보수를 마치고 2012년 5월 8일 문을 연 '이상의 방'은

시인을 기억하는 모든 이를 위한 사랑방으로

이상과 관련된 40여권의 도서와 영상물을 구비하고 있으며,

연구 및 학술 모임을 위한 장소 대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 10월 26일부터 내년 이상의 기일인 4월 17일까지는 '제비다방'으로 운영한다.
'제비다방'이라는 이름은 1933년 이상이 24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황해도 백천 온천에서 요양하다 알게 된 기생 금홍과 함께 종로에서 문을 연 다방 이름이기도 하다.

 

11월 27일 연극인 손숙 씨가  ‘제비다방’에 ‘일일 마담’으로 참여했다.

이날 손숙 씨는 일일이 방문객을 맞이하며 환담하다가,

오후 4시 반부터 특별한 무대로 '이상의 집' 프로젝트 경과를 소개하고,

제비다방과 얽힌 이상의 행보에 관한 글을 읽어주기도 하였다.

잠시 내빈을 소개하던 중 평상복 차림으로 방문한 명창 안숙선 씨를 무대에 오르게 해

즉석에서 '사랑가' 한대목을 청해 들었다.

잠시 차를 마시고 자유로이 책을 보기도 하는 시간을 이어가다가

다시 손숙 씨가 무대에서 이상의 누이동생 김옥희의 회고록을 발췌해 낭독했다.

이어 관객 중에서 손숙 씨에게 애송시 한 편을 낭송해 줄 것을 요청하자

배우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 같아서 평소 노천명의 '남사당'을 좋아한다며

낭랑하게 암송하기 시작했다.  

 

 

남사당        (노천명, 1940)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나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야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려
람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男聲이 十分 屈辱된다

山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處女도 있었건만
다음날이면 떠남을 짓는
處女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洞里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小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山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여배우의 육성에 녹아든 시의 여운에 모두 다른 말이 필요치 않다는데 공감한다.

어느새 바깥 골목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상의 집 : 서울시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

문의 전화 : 아름지기 사업 교육팀 02-741-8374~5

개방 시간 :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점심시간 12시부터 13시까지 휴무, 월요일 휴무)

찾아가는 길 :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200m 직진,

                   우리은행 골목에서 좌회전하여 100m 전방 오른편에 이상의 집(제비다방)이 있음


 

 

오후의 제비다방

 

 

안상수 홍익대 교수가 디자인하고 쇳대박물관에서 제작한 간판들

 

 

이상의 문학과 닮은 점이 많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1일' 포스터가 전면 유리창에 붙어있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의 실내

이 날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홍라희 여사도 다녀갔다고...

 

 

손숙 씨와 인증샷

 

 

이상 관련 서적이 빼곡한 서가에서

 

 

 

 

 

 

 

 

 

재단법인 아름지기 신연균 이사장

 

 

 

 

 

 

 

 

 

 

 

 

 

 

 

 

 

더보기

 이상이 살던 집 ‘제비다방’ 됐다

시인의 집, 통인동 프로젝트로 새단장

서울 통인동 ‘이상의집’에 26일 제비다방이 문을 열었다. 간판도 단정히 걸었다.

 

안상수 홍익대 교수가 디자인하고 쇳대박물관에서 제작했다. [사진 아름지기]

13인의 아해(兒孩·어린이) 가 무섭다며 내달리던 막다른 골목이 이쯤일까. (이상의 ‘오감도-시 제1호’)

 26일 서울 통인동 154-10번지 한옥에 ‘제비다방’이 문을 열었다. ‘박제가 된 천재’ 이상(김해경·1910∼37)의 쓰디쓴 인생이 녹아 들어간 공간이다. 통인동 한옥은 그가 세 살 때 양자로 들어가 자란 백부(伯父)의 집 일부다. 스물일곱에 요절한 이상은 여기서 스물세 살까지 살며 첫 장편 ‘십이월십이일’(1930),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烏瞰圖)’(1931) 등을 발표했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하던 이상은 1933년 폐결핵으로 총독부 기수직을 사임했다. 이후 지금의 종로1가에 제비다방을 차렸으나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이후 인사동 카페 ‘쓰루(鶴)’, 종로1가 다방 ‘69’ 등을 잇따라 차렸다.

 하지만 그 어느 다방의 위치도 지금은 알 수 없다. 그의 흔적은 현재로선 통인동 ‘이상의집’이 유일하다. 철거 위기의 이 집은 2003년 김수근문화재단(이사장 김원)이 매입하면서 관심을 모았고, 현재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과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함께 관리하고 있다.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긔분 잇서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喫茶店) 중에 가장 이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일홈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끄은다.’

 1934년 종합잡지 ‘삼천리’의 ‘끽다점 평판기’에선 제비다방에 대해 이렇게 썼다. 26일의 개업식 ‘이상, 돌아오다’에 는 소설가 조정래, 연극인 손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 등 문화인 50여 명이 참석했다. 72년 10월 월간문예지 ‘문학사상’ 창간호에 이상 초상화(구본웅, ‘친구의 초상’)를 표지화로 실은 데 이어 이상의 미발표 유고를 발굴·소개했던 이어령 당시 ‘문학사상’ 주간, 타이포그라피적 관점에서 이상 시(詩)를 연구하며 ‘이상읽기’의 범주를 확장한 홍익대 안상수(시각디자인) 교수 등이 저마다의 추억으로 이상을 호명했다.

 아름지기는 이날부터 ‘통인동 제비다방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상의 기일인 내년 4월 17일까지 이상·근대·서촌(西村) 등을 키워드로 문학·음악·영화 등이 어우러진 문화행사를 연다. 02-741-8374.

[중앙일보]입력 2012.10.29 00:43 권근영 기자

 

 

더보기

 

작가 이상, ‘제비다방’의 날개 다시 펴다

종로 통인동 옛집 철거 위기 딛고 새로 꾸며 30년대 다방 재연
2012년 11월 02일 (금) 18:14:26

▲ 2010년 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로 파주에서 열린 기획전시전 포스터.
소설 <날개>와 시 <오감도> 등을 남긴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이 살던 집이 다방으로 꾸며졌다.
지난달 26일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의 옛 한옥에 문을 연 ‘제비다방’이다. 다방 이름은 이상이 1930년대 황해도 배천에서의 요양 생활 중 만난 금홍이와 함께 시작한 다방에서 그대로 따왔다.

그는 1934년 종합잡지 ‘삼천리’의 ‘끽다점 평판기’에서 ‘봄은 안 와도 언제나 봄긔분 잇서야 할 제비. 여러 끽다점(喫茶店) 중에 가장 이땅 정조(情調)를 잘 나타낸 ‘제비’란 일홈이 나의 마음을 몹시 끄은다.’고 썼다.

이상은 금홍을 마담으로 앉히고 종로 1가에 ‘제비다방’을 차렸지만 경영에 실패하고 얼마 못가 문을 닫았다. 이후 인사동에 카페 ‘쯔루(鶴)’를 냈다가 이 또한 곧 문을 닫았고 광교 근처에 다방 ‘식스·나인(69)’을 개업하려 했으나 영업허가조차 받지 못했다.

이러한 이상의 다방 편력기는 당시 모더니스트들의 ‘트렌드’에 이끌린 끊임없는 시도로 보인다.
이번에 문을 연 ‘제비다방’은 이상이 3살 때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들어와 23세까지 살았던 곳이다. 그는 이 집에서 첫 장편 ‘십이월십이일’(1930), 첫 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烏瞰圖)’(1931) 등을 발표했다.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했으나 1933년 폐결핵으로 그만두고 말았다.

 

▲ 지난해 ‘제비다방’ 재연 등 문화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공사를 시작한 통인동 ‘이상의 집’ 모습.
통인동 집은 ‘이상의 집’으로 불리며 남아있었으나 2003년 철거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김수근문화재단이 매입해 가까스로 철거되지 않았다.

지금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과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함께 관리하고 있다.
아름지기는 지난해 5월부터 ‘이상의 집’을 문화공간으로 꾸미기로 하고 공사를 시작한지 1년 6개월만에 ‘제비다방’의 문을 열었다.

‘제비다방’의 문을 여는 날 가진 개업식 ‘이상, 돌아오다’에는 소설가 조정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권영빈 위원장, 연극인 손숙 등 문화예술인 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인우 기자 rain9090@seoultimes.net
<서울시민의 목소리 서울타임스(http://www.seoul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