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벗과 함께

강천산의 가을빛 2. 맑고 정겨운 이름, 영숙&기숙

달처럼 2010. 12. 12. 12:57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

출생연도에 따라 남자 이름은 1945년에는 영수, 75년에는 정훈, 2005년에는 민준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고,

여자 이름은 1945년에는 영자, 75년에는 미영, 2005년에는 서연이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양반가 남자들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꺼려 아호, 자, 호 등을 따로 지어두고 사용했다.

그러나 영아 사망율이 높던 시절이어서인지 평민의 경우는 아이가 얼마쯤 자랄 때까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

1930년대의 수필가 김진섭 씨는 '명명철학'이라는 글에서 이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이름을 갖고 죽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훨씬 분명하게 기억된다고 했다.

 

이 땅의 여자들은 20세기 초까지도 이름 없이 살다간 이들이 많다.

내 친할머니는 이름이 없으셨는지 호적에 본관과 성만 기록되어 있다.

근본 없는 가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 성함은 조아지.

호적계 직원이 집집 방문하여 호적을 작성하며 어린 여아를 가리키며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더란다.

나의 외증조할머니께서 "그냥 애기지, 이름은 무슨..."이라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호적계 직원이 '애기'를 한자로 적어 넣은 '아지(兒?)'가

그만 90 평생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일제의 영향으로 한 동안 이 땅의 여자 아이의 이름에 '자(子)'를 넣는 일이 흔했다.

'영자', 그 이름이 남부끄럽다고 우리 시아주버님은 결혼식 때 신부 김영자의 이름 석 자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영자의 전성시대', 뭐 그런 영화가 있던 시절이고 하니 혹 하객의 웃음을 살까 저어하신 모양이다.

식장에는 신부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따로 부르던 이름을 사용했단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전혀 개의치 않으시지만.)

 

우리 또래에 이르러 여자들 이름이 몇 가닥으로 다양해졌다.

아직 '자'자의 위세가 남아 있었지만,

'희'자, '경'자가 많이 쓰였고, 

'맑을 숙(淑)'도 빼놓을 수 없다.

영숙, 기숙

 

이름은 위력이 있다고 한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마르코만인과 싸울 때 전장에 사자를 내보냈다.

이를 보고 마르코만의 장수는

"저것은 사자가 아니다. 로마의 개다."라고 외쳤고, 병사들은 미친 개를 잡듯이 사자를 쳐서 승전했다고 한다.

마르코만의 장수는 지혜로웠다. '사자'는 겁먹을 상대이지만, '개'는 해치울 수 있는 상대인 것이다.

이름이 그만한 영향을 미친다는 예화이다.

 

淑 (맑을 숙)을 사전에는

㉠맑다, 깨끗하다 ㉡착하다, 어질다 ㉢얌전하다 ㉣사모하다(思慕--) ㉤아름답다 ㉥길하다, 상서롭다

로 풀이해 놓았다.

 

영숙, 기숙

과연 이름처럼 살아왔더구나.

맑고 깨끗하고 어질고 아름답게...

앞으로도 이름에 들어있는 뜻처럼 길하고 상서로운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우리 23기의 사랑스런 누이 같은 그대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