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지.
10여 년 전에 TV로 방영한 드라마이지만
아직도 탤런트 김희애를 보면 그 때 맡았던 '후남이' 역이 오버랩이 되곤 해.
'귀남이' 역의 최수종은 가부장적 질서 속의 아들 대접이 얼마나 극진했는지를 보여주었고,
이 땅의 딸들은 '후남이'의 설움에 내 설움까지 보태며 감정이입이 되었었지.
우리 자라던 시절에 차별 대우 받았던 것 떠올리면 밤새워도 부족할 걸.
우선 남녀의 밥상이 달랐고,
어쩌다 한상에서 먹더라도 귀한 반찬은 아버지와 아들 몫이었지.
그 때는 집에 손님이 오면 좋더라.
혹 반찬을 남기면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어서.
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밥 해 먹으며 학교 다녔지.
나도 예외는 아니었어.
어쩌다 밥이 네 그릇 정도 남아 있어서
내가 점심 안 먹으면 저녁 안 해도 우리 네 식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끼니 거르고 밥 안 해 놓으면 게으르다고 무지 혼 났지.
왜 밥할 시간이 되면 공부가 그리 잘 되던지.
밥 안 하려고 꾀 부리는 것으로 구박을 있는 대로 받았지.
부지깽이도 한 몫 거든다는 농사철은 워낙 바쁘니 일을 거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한겨울에 아침밥하러 부엌에 나가는 것은 정말 춥고 싫었어.
아들은 따뜻한 아랫목에 있는데...
4학년 때 가을로 기억해.
운동회 연습을 하느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는데
울 오빠가 못 보던 옷을 입고 있기에 웬 일인가 했더니
점심 때 집에 온 보따리 장수에게서 사 주었다는 거야. 아들만.
어디 그 뿐이니 나 모르게 몰래 사 준 바나나는 또 어떻고.
하루는 부모님께 혼나고 속상해서 부모님 애를 태우려고 울타리 밖에 숨어 있었어.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를 찾지 않는 거야.
아들이었다면 이럴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분하기도 하지만
하는 수 없어 내 발로 집에 들어갔지.
그 무렵이었을 거야, 부곡리 개울 건너에 있던 우리 집 뒤란에서 내가 새끼줄로 목을 매던 때가.
그걸 본 우리 엄마가 박장대소 하더군.
"그렇게 해서 안 죽는다. 네 손에 힘이 빠지면 느슨해져서 안 죽어."
아마 그 때 성공했으면 아들 딸 차별 금지법도 나오고 여성운동 열사 하나 나오는 거였는데.
나중에 20대가 되어서 엄마에게 물었어. 왜 나에게 그리 엄하고 냉정했는지를.
그 때 엄마의 대답은
"아들은 평생 함께 살 자식이니까 다소 빈틈이 있어도 흉이 안 되지만,
딸은 남의 집에 보내야 하니 혹독하게 키워야 나중에 출가해서 문제 없이 산다."
그 말이 얼만큼은 사실이고 얼만큼은 아니겠지만, 인내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분명해.
만약에 엄마가 녹록했으면 벌써 몇 번이나 판을 엎었을 지도 몰라.
내가 돌아갈 곳이 없다는 인식은 확실히 심어 주셨으니까.
상전벽해라더니 지금은 딸 낳으면 더 축하해 주는 세상이 되었어.
예전에 딸을 구박하시던 어머니들이 이제는 그 딸들에게서 더 효도를 받고 지내시지.
속은 어떠하든지 겉보기에는 딸들의 위상이 상당히 변화했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직도 아들이 우선이지.
이 땅에 아직도 남아있는 후남이들아
부모님이 잘 키워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힘들 때 육아 도와 주시고, 지금껏 김장 담가 주시고, 농사 지은 것 보내 주시는 건
완전히 보너스다.
그분들이 이루어 놓으신 것은 그분 세대의 가치관대로 처분하시는 거다.
소중한 것은 오직 사람이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부모 형제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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