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부안 문학기행은 신석정 시인의 문학의 산실인 청구원에서 시작하였다.
이 집은 1934년에 지은 초가 삼간이다.
'촛불', '슬픈 목가' 등의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이 집에서 쓰여졌다.
1952년 전주로 이사할 때까지 많은 문인이 이 집을 방문하였다.
논 여섯 마지기, 밭 이백 평 가량을 소작하였기에 때꺼리 걱정을 하며 지낼 형편이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고 하늘의 별을 보며 희망을 읊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누마루를 달아내 사랑방을 만들었고
정지용, 박용철, 장만영, 김기림, 이하윤, 서정주 등 숱한 문인들이 드나들었다.
청구원 옆에는 '신석정 문학관'을 건립하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먼나라을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 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 까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
노오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그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 않으렵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시 ‘신월(新月)’에 영향을 받아 쓰여 졌다.
타고르는 10여 세에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살았던 시인이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 듯 반복과 물음이 친근하다.
신석정 시인은 20여 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대표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보고 싶은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 신석정 시인이 등장한다.
신석정 시인 역시 어머니는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이다.
어린 아이에게 어머니의 품속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며, 평화로운 세계다.
식민지 상황의 궁핍하고 부자유스러운 공간 속에서 퇴행 공간을 갈구하던 곳을 찾던 신석정 시인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유독 어머니에게 ‘그 먼 나라’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지나온 세월동안 자신을 격려하고 인정해 주던 믿음이 어머니만한 분이 있었던가?
이런 내면의 갈구함을 어머님께 드리는 편지 형태가 시로 승화된다.
잃어버린 조국과 세상을 떠나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일은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이다.
이 시는 서정성과 반복적인 언어 사용으로 호소력이 있어 낭송하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편지 형태의 문장이 시가 되어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른 세상에 계신 어머니에게 자신이 아는 ‘먼나라’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먼 나라’의 꿈같은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없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곳에서 세상 떠나신 어머니를 만나 행복한 한 때를 보내던 순간에 잠이 깬다. 꿈이었다.
꿈결에 만났던 어머니의 생각은 오래도록 현실의 의식 속에 살아남는다.
이렇듯 잠은 무의식 상태이기에 죽은 자도 만난 수 있는 꿈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신석정 시인의 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미래로의 전진을 위해 현실의 절망을 잊기 위해 어머니께 부치는 편지다.
세상 떠나신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유년 시절로 퇴행하여 평화로운 삶을 갈구하고 싶은 시인이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다.
‘먼 나라’는 민족이 당하는 수난의 역사 속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장소로 도피하려는 시가 아니다.
이곳은 현실이 될 수 있는 실현가능한 자연이며 소박한 삶의 현장이다.
제2시집 ‘슬픈목가’ 에는 현실적인 삶이 그대로 반영한 시가 많다.
1935~1945년까지 일제 암흑기에 창작된 시이기에 목가적 전원시는 슬픔의 목가시가 대부분이다.
--김경식 시인 해설
기행 중에 낭송했던 타고르의 시 챔파꽃 전문을 옮긴다.
챔파꽃
-라빈드라타트 타고르
내가 장난으로 챔파꽃이 되어서는
저 나무 높을 가지에 피어
바람에 웃으며 흔들리고
새로 핀 잎 위에서 춤추고 있다면
엄만 나를 알아보실까?
엄마는 이렇게 부르실 거야
"아가야, 어디 있니?"
그럼 난 살짝 웃고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나는 살며시 꽃잎을 열고
엄마가 하는 일을 몰래 보고 있을 거야
엄마가 목욕을 한 다음
젖은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기도드리는 작은 마당으로 건너가려
챔파나무 그늘 속을 걸어갈 때
엄마는 꽃향기를 맡을 테지만
그것이 내게서 풍겨나오는 줄은 모르실 거야
점심밥을 먹은 다음
엄마가 창가에 앉아 라마야나 이야기책을 읽을 때
나무 그늘이 엄마의 머리와 무릎 위에 어리며
나는 내 아주 작은 그림자를
엄마가 읽고 있는 책 위에 드리울 거야
바로 엄마가 읽고 있는 그 자리에
하지만 엄마는 그것이 바로
엄마의 작은 아가의 보잘것없는
그림자인 줄 정말 아실까?
저녁 무렵
엄마가 등잔불을 손에 들고 외양간으로 가면
나는 급히 땅에 떨어져
다시 엄마의 아가가 되어
옛날이야기를 조를 거야
"어디 갔었니
요 장난꾸러기 아가야?"
"그것은 말 못해요, 엄마"
그때엔 엄마와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할지도 몰라
'서리서리 > 문학의 산실을 찾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안 기행 3. 찾아오는 이를 소생케 하리. '내소사' (0) | 2011.03.13 |
|---|---|
| 부안 기행 2. 이화우 흩날리던 '매창뜸' (0) | 2011.03.13 |
| 강화도 문학기행 7. 이건창 생가, 정제두 묘소 (0) | 2011.02.13 |
| 강화도 문학기행 6. 정족산성(삼랑성), 전등사, 정족산 사고 (0) | 2011.02.13 |
| 강화도 문학기행 5. 고구려 기상의 부활을 꿈꾸며 쓴 대서사시 동명왕편 (0) | 2011.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