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문학의 산실을 찾아

부안 기행 2. 이화우 흩날리던 '매창뜸'

달처럼 2011. 3. 13. 10:58

 

 

 

 

 

 

 

 

 

 

 

 

 

 

 

 

 

 

 

 

 

 

부안은 문학의 고향이다. 조선의 3대 여류시인인 이매창과 신석정 시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부안에는 이매창 시인의 시비와 묘가 잘 보존된 곳이 있다. ‘매창공원’이다.

매창 시인의 무덤이 있던 ‘매창뜸’ 자리에 부안군이 ‘매창공원’이라고 명명했다.

이매창 시인의 대표시 ‘이화우’ 시비에 눈길이 간다. 한시는 50수 이상이 전해오지만 유일한 시조이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이매창(1573-1610)은 허난설헌,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 시인중의 한명이다.

그녀는 선조 6년에 당시 부안 현리였던 이탕종의 딸로 태어난다.

그녀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어서 ‘계생’이란 이름이 되었고 호가 ‘매창’이다.

광해군 2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시와 가무에 뛰어 났으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매창은 유희경(1545~1636), 이귀(1557~1633). 허균(1569~1618)같은 당대 거물들과 시로 교류한다.

그들이 쓴 시들과 사랑이야기들이 오늘까지 전하며 감동을 준다.

매창은 때로 홍길동전의 저자이기도 한 당대의 개혁주의자 허균에게서 놀라운 세상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귀’는 이율곡 선생의 제자로 김제군수와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김제군수로 근무할 때 가까운 부안의 매창과 인연이 닿았다.

그러나 그와 관계된 문헌은 허균의 ‘성소부부고’의 ‘고관기행편’에 짧게 언급된 “倡桂生 李玉汝情人也‘것이 전부다.

’이옥여‘는 이귀의 이름이다. "기생 매창은 이귀의 연인이다”로 해석하면 적당하리라.

그를 사랑하던 남정네들이 이렇게 있었지만 그녀는 늘 고독했다.

 매창공원에 있는 시비에 있는 ‘임생각’을 읽어보면 당시 매창의 사랑과 절망 고독을 이해하게 된다.

 

애끓는 정 말로는 할길이 없어

밤새워 머리칼이 半 남아 세였고나

생각는 情 그대로 알고 프거던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 손 보소

 

허균의 저서 ‘성소부부고’에는 그녀가 성품이 고결하여 음란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이매창이 시인으로 등극된 것은 1668년 그녀의 사후 58년 만에 부안의 아전들이 ‘매창집’을 간행하였기 때문이다.

부안에 있는 ‘개암사’란 절에서 출판한 매창집에는 주옥같은 매창의 시 58수가 기록되어 있다.

 

 매창의 한시는 약 500여 수가 있었다고 하지만 58수만 기록이 남아 있다. 그녀가 묻힌 묘소도 자칫 사라질 수 있었다.

부안의 아전들과 유학자들은 묘소에 비석을 세웠기에 오늘까지 그 묘가 존재할 수 있었다.

현재 그녀의 고향 부안에 있는 ‘매창공원’은 매창의 문학적인 삶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일찌기 매창집을 출간하고 묘소에 비석을 세운 부안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매창은 일개 시를 쓰던 기생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새삼 기록과 출판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매창의 한시는 57수 모두가 매창집에 수록되었고 시조는 오직 ‘이화우’ 한 수 뿐이기 때문이다.

‘이화우’는 규장각본 ‘가곡원류’에 게재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시조는 촌은 유희경과 헤어진 후 그에게서 연락이 없어 답답한 심정을 쓴 것이다.

만발한 배꽃이 휘날림이 비처럼 쏟아질 때 헤어진 유희경은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까지 소식이 없다.

부안에서 서울까지 거리는 천리 길,

늦가을 밤은 길어지고 사랑하던 사람 유희경을 생각하며 견디기 어려운 고독감이 가슴을 흔든다.

‘매창’은 천부적인 시인이었으며 정이 많은 여인이었다.

 

38세로 세상을 떠난 그녀는 죽는 날까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 그녀보다 28세 많은 유부남 ‘유희경’이다.

신분적인 동질감과 시와 문장으로 사귄 정이 나이를 초월하여 넓고 깊어졌으리라.

조선최고의 예의범절과 상례의 1인자로 가의대부를 지낸 유희경과 부안의 매창의 사랑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랑은 국경과 신분을 초월한다’ 말이 유일한 설명이 될지 모른다.

유희경이 매창을 위해 쓴 시 ‘매창을 생각하며‘를 읽는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娘家在浪州)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我家住京口)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相思不相見)

오동나무에 비 뿌리면 애간장이 타네 (腸斷梧桐雨)

 

허균과 매창의 인연은 주로 한시를 중심으로 한 문장 교류였다.

허균과는 10년간 인연의 기간이 존재하였지만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허균은 매창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위해 시 2편을 지었다.

허균의 저서인 ‘성소부부고’에 게재된 시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를 허경진 교수의 번역으로 읽어보자.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그 누구가 설도의 무덤 곁을 찾아오려나.

                                                                                                                -    해설 : 김경식 시인 -

 

김경식 11.02.28. 00:29

매창과 이중선의 묘소에서 우리는 눈이 부신 봄빛을 쏘이며 두 여인의 삶과 문학, 노래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매창의 묘소를 참배한 것은 기행에 의미를 더했습니다.

 

제비꽃 11.02.28. 12:49

날씨가 한 몫을 하였던 부안 문학기행은 순간 순간 행복함의 연속이였지요.
매창의 시를 잘 찍어 올려 주셨네요. 이렇게 슬라이드로 보는것도 매력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