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무거움을 비로소 알게 하는 길입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느리게 올라오라고
산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이리 고되고 숨 가쁜 것 피해 갈 수는 없으므로
이것들을 다독거려 보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무둥치를 붙잡고 잠시 멈추어 섭니다
내가 올라왔던 길 되돌아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워 나는 그만 어지럽습니다
이 고비를 넘기면 산길은 마침내 드러누워
나를 감싸 안을 것이니 내가 지금 길에 얽매이지 않고
길을 거느리거나 다스려서 올라가야 합니다
곧추선 길을 마음으로 눌러앉혀 어루만지듯이
고달팠던 나날들 오랜 세월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워
그리움으로 간절하듯이
천천히 느리게 가비얍게
자주 멈춰 서서 숨 고른 다음 올라갑니다
내가 살아왔던 길 그때마다 환히 내려다보여
나의 무거움도 조금씩 덜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편안합니다
― 「깔딱고개」 중에서 (『도둑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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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1942년 광주 출생. 1962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으며, 오랜 언론계 생활을 마치고 현재 시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시집에 『이성부 시집』『우리들의 양식』『백제행』『전야』『빈 산 뒤에 두고』『야간 산행』 등이 있다. 시집 (책만드는집)에 실린 「백비」로 제18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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