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좋아하는 글, 생각나는 글

깔딱고개 /이성부

달처럼 2011. 12. 18. 09:49

 

 

 

내 몸의 무거움을 비로소 알게 하는 길입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느리게 올라오라고
산이 나를 내려다보며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이리 고되고 숨 가쁜 것 피해 갈 수는 없으므로
이것들을 다독거려 보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무둥치를 붙잡고 잠시 멈추어 섭니다
내가 올라왔던 길 되돌아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워 나는 그만 어지럽습니다
이 고비를 넘기면 산길은 마침내 드러누워
나를 감싸 안을 것이니 내가 지금 길에 얽매이지 않고
길을 거느리거나 다스려서 올라가야 합니다
곧추선 길을 마음으로 눌러앉혀 어루만지듯이
고달팠던 나날들 오랜 세월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워
그리움으로 간절하듯이
천천히 느리게 가비얍게
자주 멈춰 서서 숨 고른 다음 올라갑니다
내가 살아왔던 길 그때마다 환히 내려다보여

나의 무거움도 조금씩 덜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편안합니다

 


― 「깔딱고개」 중에서 (『도둑 산길』)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고통


세상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사도가 높은 산길을 흔히 ‘깔딱고개’라고 합니다. 오르는데 힘이 들고, 숨을 깔딱거린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붙여졌을 것입니다. 산의 정수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그런 깔딱고개가 몇군데 있기 마련입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등 큰산에는 깔딱고개가 여러군데에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할 경우에는 이런 가파른 산길을 끊임없이 오르내리거나, 평지와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오르막길의 힘겨움과 내려가는 길이나 편평한 길의 편안함이 되풀이되는 것이 곧 산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길을 사람의 평생 ‘삶’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고되고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편안하게 내려오거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안정되고 행복할 때도 있습니다. 시집 <도둑산길>에 수록되어 있는 ‘깔딱고개’라는 시도, 내가 산행을 하면서 체험하는 힘겨운 오르막길에서, 나와 사람들의 삶을 성찰하며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한 것입니다. ‘고되고 숨가쁜’ 시절을 우리는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것들을 ‘다독거려 보듬고’ 천천히 느리게 올라가거나, 잠시 멈추어 쉬어가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정상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급하다고, 오르막길을 뛰어가다가는 금세 주저앉거나, 길을 포기하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오르막길을 나의 장애물이나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의 동반자로 여기며 ‘거느리거나 다스려서’ 올라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고개마루에 올라서거나 정상에 오르면 지나간 일들이 모두 아름다워집니다. 그 힘겨움과 숨가쁨 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 마련입니다.

 


이성부 올림

이성부
1942년 광주 출생. 1962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으며, 오랜 언론계 생활을 마치고 현재 시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시집에 『이성부 시집』『우리들의 양식』『백제행』『전야』『빈 산 뒤에 두고』『야간 산행』 등이 있다. 시집 (책만드는집)에 실린 「백비」로 제18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