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원시림 속에서 야생화를 만나며 나태주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시를 음미하다가 차운하여 나름대로 패러디한다.
자세히 볼수록
예쁘다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신록의 원시림 트레킹 둘째 날 일정은 점봉산 곰배령(해발 1164미터) 숲길 트레킹이다.
안가리골을 나와 진동계곡을 따라 버스로 30분 가량 이동해야 곰배령 입구에 도착한다고 한다.
눈이 많아서 겨울엔 설피를 신어야 갈 수 있다는 설피마을과 바람이 너무 강해서 소가 날아갈 정도라는 쇠나드리벌판을 지난다.
백두대간의 한 자락인 점봉산으로 들어선다.
곰배령은 점봉산(1424m) 능선이다. 한계령 북쪽이 설악산이고 그 남쪽이 점봉산이다. 점봉산의 능선에서 흘러나온 ‘작은 점봉산’ 정상에서 ‘호랑이코빼기봉’까지 길게 이어진 능선상의 광활한 초원이 바로 곰배령 고갯마루다. 곰배령은 한때 양양에서 봇짐장수들이 당나귀에 소금을 싣고 넘던 길이었고, 그 후에는 약초꾼들과 심마니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흙을 고르는 데 쓰이는 정(丁)자 모양의 고무래를 강원도 사투리로 ‘곰배’라고 한다.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어 입산이 금지돼 있지만 곰배령 오르는 길은 허용된다. 단, 예약자에 한해 출입할 수 있다. 곰배령길은 4.8km로 왕복 4시간이면 충분하다.
강선마을을 지나서 곰배령으로 오르는 길. 그 길을 두고 어떤 이는 주저없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했다. ‘곰배령 가는 길’이 더 매혹적인 것은 그 길이 유순하기 때문이다.
해발 500미터 쯤에서 등산로가 시작되어서인지 8부능선까지는 완만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왕복 10㎞의 짧지 않은 길이지만, 경사가 급하지 않아서 꽃과 나무를 살피며 산행하기에 그만이다.
강선마을을 지나 계곡을 벗어나자 길은 숲으로 바짝 다가선다.
키 큰 활엽수 그늘마다 왕관 모양의 관중과 반음지 식물인 속새가 삐죽삐죽 올라와 있다.
산이 깊어 다른 곳에 비해 개화 시기가 늦다.
이 산에 자생하는 식물이 900여 종에 달한다니, 보고도 이름 모르는 식물들이 허다하다.
좀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름을 듣고 몇 발자국 안가서 다른 이름과 혼동하여 다 잊어 버린다.
우리 일행 중 한 분은 야생화에 상당히 조예가 깊으셨는데,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관심을 갖고 익히셨고, 지금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신다.
그분은 교사로 정년 퇴임한 지 여러 해 된 분인데, 야생화 탐구 경력만도 50년 가까이 된다.
제비꽃도 원예종과 야생화가 다르고, 조팝나무도 꼬리조팝, 산조팝, 참조팝, 황금조팝, 갈기 조팝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야생화의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나의 무지가 드러난다.
주변을 보니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는 무리와 손에 식물도감을 들고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관찰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눈에 띈다.
우리 일행 중의 한 젊은이는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면서 확인한다. 50년 경력의 선배는 네이버 자료 중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정도로 해박하다.
곰배령 야생화의 절정은 고개 정상이다. 정상에 가까워졌다 싶을 즈음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고 갑자기 광활한 산상 초원이 펼쳐진다.
시선은 꽃보다 먼저 사방을 둘러친 우람한 산자락과 능선을 좇게 된다. 설악산 대청봉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운이산과 한석산, 가리산 자락이 펼쳐진다.
그제야 고개를 숙이면 탁 트인 초원에 가득 피어난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찌 이리도 색깔도 모양도 다양한 꽃들이 한데 몰려 피어났을까 싶다.
긴 초원 능선을 계속 따라가면 손에 잡힐 듯 올려다보이는 점봉산 정상에 단숨에 가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출입이 가능한 것은 곰배령 정상까지이니 이쯤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곰배령 정상에는 산림청에서 나무데크를 설치해 놓았다. 야생화 군락지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다. 곰배령에서는 산림청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오후 4시까지는 하산을 완료해야 한다.
산 곳곳에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있어 오싹하게 한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 강선마을을 지났을 때, 갑자기 연무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카메라를 다시 꺼내 든다.
셔터스피드, iso, 조리개 등을 물으며 분주히 셔터를 누른다. 나도 그 무리에 섞여 디카로 용감하게 들이민다.
■ Travel Info
[교통]승용차 서울→춘천→동홍천 나들목(국도 44호선)→인제→현리→진동리, 서울→양평(국도 44호선)→홍천→인제→현리→진동리 버스 동서울∼인제(2시간 20분 소요), 서울 상봉동∼인제(2시간 40분 소요)
[먹을거리]방동막국수(033-461-0419) 오류동막국수(033-461-1948) 진동산채가(033-463-8484) 매화촌해장국(033-462-7963) 고향두부집(033-461-7391)
[민박]연가리맑은터(033-463-2161) 설피밭지수네(033-463-0411) 방태천황토민박(033-463-3309) 하늘아래첫동네(033-463-4613) 꽃님이네집(033-463-9508) 실개울옆통나무집(033-463-6554) 진동리의 아침(011-752-4937) 해오름산장(010-5231-5754)
[곰배령탐방 사전예약제]수 목 금 토 일요일만 입산이 허용된다. 인제국유림관리소(033-463-8166, 7)에 입산 전날 오후 6시까지 신청해야 가능. 탐방객 하루 200명으로 제한. 진동삼거리를 출발해 강선마을을 거쳐 곰배령에 이른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입산허가증을 내준다. 봄가을 산불예방 기간(2월 1일∼5월 15일, 11월 1일∼12월 15일)엔 입산이 전면 금지된다. 탐방 가능 기간(12월 16일∼다음해 1월 31일, 5월 16일∼10월 31일)에도 매주 월 화요일엔 문을 닫는다.
[안내]인제군 문화관광과 033-460-2082
돌아오는 길에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 넘었다는 행치령을 넘다가 정상에서 차를 멈추었다.
길 섶에 나란히 앉아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회원의 태평소 연주를 듣는다.
천상에서 울리는 진혼곡 가락이 산줄기를 타고 울려 퍼진다.
하늘의 소리와 땅의 소리가 맞닿은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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