校庭의 벚꽃이 비바람에 허무하게 떨어진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지난 금요일(10.04.23.)
퇴근 길에 마주친 젊은 동료들에게 돌다리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동승하게 하고는
문득 워커힐 봄꽃축제에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여
학교 언덕을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에 데이트 코스를 알려 주겠다며
드라이브를 제안하여 워커힐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미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겼고, 이슬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이라
큰 기대는 못 하고 가볍게 한 바퀴 돌아나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호텔 본관 앞을 지나 피자힐로 가는 일주도로에 접어들자
아름드리 벚꽃이 만개한 채 하늘을 덮어 눈 앞에 근사한 세계가 펼쳐졌고,
날씨 덕인지 상춘 인파는 그리 많지 않아 호젓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젊음은 아름다움이다.
갑자기 동행이 된 이지지 선생님, 최지연 선생님.
우리 학교 벚꽃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멋있을 수 있냐며 감탄 연발이다.
그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어줍잖은 솜씨로 자동카메라를 들이대도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니 흐뭇하다.
어떤 모습을 담아도 보기 좋고 그림이 되니
역시 젊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비가 와서 들고 나온 우산은 훌륭한 소품이되고...
모 카드사 광고판 앞에서 요즘 주가가 높은 배우 황정음이 되어 보고...
대형 꽃 장식 속에서 꿈에 젖어 보기도 한다.
아, 정녕 꽃이 눈되어 내렸구나.
축제를 위해 설치한 간이 테이블에도 길에도 연분홍 꽃잎은 사뿐사뿐 내려 앉았다.
산책 길에 만난 작은 전시회
꽃잎과 나뭇잎은 작품 안으로 들어가
멋진 花冠이 되고, 모자가 되고,
바람에 나부끼는 넥타이가 되었다.
피자힐은 다음에 남친들이랑 데이트할 때 들르라고 남겨 두고
비가 내려 쌀쌀한 날
야외용 난로 옆에서 아이스크림으로 입맛을 다셨다.
전문 모델 못지 않죠?
여기도 꽃을 테마로 한 포토월이었습니다. 하하하
나 어때요?
주현미랑 같나요?
뮤지컬 배우 느낌이 나지요.
공연을 마친 후의 무대 인사처럼...
꽃 그늘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며...
나도 곁다리로 끼어 들까.
꽃을 보랴,
젊어서 더욱 예쁜 동료를 보랴,
이 날 무지 행복했다우.
그로부터 이틀 뒤인 일요일 오전
영화감독 장진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북클럽'에서
좋은 시 하나를 만났다.
벚꽃나무 곁을 지나며
양애경
떨어져 내리는 벚꽃잎은
여자의 살이다
세상 어디에도
그렇게 다정하고
쓸쓸한
살빛을 본 일이 없다
보도 위에서 바스락거리는 꽃잎을 한줌 쥔다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에 달라붙는다
전생에 나는
벚꽃 같은 여자를 사랑한
남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여자가 복사빛으로 요염해지고
갓난아이를 젖가슴에 안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저리도 투명하고 핏기가 없으니
뒤를 돌아본다
나무둥치에 풍성한 머리칼을 기대고
지켜보는
다정하고 쓸쓸한 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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