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울길 대신 선택한 코스는 비둘기낭이다.
'비둘기낭'은 한탄강 절경 중의 하나로
용암 분출로 생긴 협곡과 낭떠러지에 수백마리의 백비둘기가 서식하였던 곳이라
'비둘기'와 '낭떠러지'를 합성하여 생긴 지명이란다.
고석정을 떠나 앞 차가 인도하는 대로 달렸다.
도로를 벗어나 길을 잃었는가 싶은 무렵 다 왔다고 한다.
그저 그런 산촌 마을 막다른 버스 정류장처럼 상점 하나만 덜렁 서 있다.
다른 여행객들이 없었더라면 어찌 이런 곳에 안내했을까 의아하게 여겼을 성 싶다.
차에서 내리자 비바람이 심상치 않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 우산을 움켜쥐고 비에 곤죽이 된 흙길을 걷는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손이 시렵다.
한여울길을 못 걸었어도 여기서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그런데 웬일이니?
그 와중에도 낙엽송이 황토색으로 단풍 든 산이 그렇게 멋지게 보이니 말이야.
비둘기낭 가는 길
바람에 잎을 떨구는 늦가을의 낙엽송
성권이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걷는 걸 보니 아직은 돌풍이 불기 전인 모양이다.
바람에 뒤집히는 우산을 가까스로 바로잡고 얼마를 걸었을까?
길가에 이 표지판이 나타나면
관목 사이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온다.
드디어 목적지.
몇 계단을 내려서니 아늑한 협곡이 나오고 바람이 훨씬 덜 하다.
전망데크에서 내려다 본 비둘기낭
그래도 바람에 단풍나뭇가지가 마구 휘둘릴 정도다.
찬비에 한기가 돌아 모자에 목도리까지 둘렀어도 모두 함박웃음이다.
비바람에 카메라가 젖는구나.
수 십 미터 아래 협곡에는 비둘기낭에서 떨어진 흙탕물이 흘러간다.
난간에 기대 선 태웅이 머리에는 서리가, 안경에는 이슬이 맺혔다.
자동 우산의 우산살이 부러져 잘 펴지지 않는다.
온 길을 돌아가려면 모자를 쓰고 목을 조여야겠어.
이 우산도 저 우산도 맥 없이 너풀거린다.
이 순간 은희 우산마저 뒤집힌다.
비가 앞을 가리고, 우산을 얼굴을 가리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는 거다.
살이 부러졌으면 손으로 받쳐들면 된다.
날이 험해서 그랬을 거야.
뒤쳐진 낙오자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더구먼.
차에 돌아왔을 때, 선미가 준비해 온 따뜻한 물 한 모금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도란도란 > 벗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맛있는 수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 (0) | 2013.01.16 |
---|---|
철원 이야기 7. 공방 카페를 겸한 맛집 '산비탈' (0) | 2012.11.12 |
철원 이야기 5.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한탄강 (0) | 2012.11.12 |
철원 이야기 4. 고석정, 외로운 바위(孤石)을 감돌아 흐르는 푸른 물 (0) | 2012.11.12 |
철원 이야기 3. 임꺽정, 그 근육질의 사나이 (0) | 2012.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