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 지역 연수를 다녀와서
(2007. 02. 19〜2007. 02. 22)
교육력 제고 활동의 일환으로 호남삼육중고 교직원 40여 명이 일본 큐슈 지역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2개월 여의 병가를 마치고 나온 직후여서 체력이 염려스러웠으나 1년 전에 오사카 지역에 다녀온 경험과 연계하여 견문을 더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져 고민 끝에 참가했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가는 일정이어서 일행은 광주에서 집결하여 버스로 부산에 가기로 되어 있었지만 출발일이 설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집에서 직접 부산에 내려가 합류하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오후 2시 40분발 KTX에 올랐다. 객실 좌석 뒤편에 비치된 잡지를 뒤적이다 보니 열차는 동대구역을 지나고 있었다. 고속철로 구간을 벗어나 속도가 느려지자 슬슬 창 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철길과 나란히 달리는 강줄기. 낙동강 칠백리는 철길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5시를 넘어선 2월의 저녁 해가 강물에 어리어 아름다웠다. 강폭이 넓어지고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것을 보니 부산이 가까웠으리라. 점점이 떠있는 물새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이 평화롭게 보였다. 저 강 건너 마을은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의 무대인 조마이섬이 아닐까? 큰비가 오면 강물이 불어 학교에 나오지 못하던 ‘건우’가 지금쯤은 마을 이장이 되어 옛날 자기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외부 세력으로부터 농토를 지켜 내기 위해 묵묵히 땅을 일구며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눈 밝고 영악한 사람들에 밀려나 조상대대로 일구어 온 땅을 하루 아침에 빼앗겼던 예전의 농민과 무역협정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오늘날의 농민의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열차는 시가지 구간에 들어섰다.
역에서 부산항 국제선 여객터미널까지는 근거리여서 택시로 기본요금이 나왔다. 대합실에 들어서니 미리 와서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고 곧 이어 광주에서 오는 버스도 도착했다. 명절 연휴 끝이라 길이 막힐 것을 예상은 했지만 꼬박 여섯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오후 7시 무렵 출국장을 통과하여 일본 하카타항으로 가는 뉴카메리아호에 승선했다. 선실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 후 레스토랑에 내려갔다. 선내에서부터 한국돈은 통용되지 않았다. 제일 작은 컵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300엔이었다. 물가의 차이가 실감났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 나라 수출 산업의 전진 기지인 부산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배가 서서히 방향을 바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산항의 야경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오륙도 근처를 지나는가? 배는 몇몇 섬을 지나 망망대해로 미끄러져갔다.
150엔짜리 자판기 녹차로 갈증을 달래고 침대에 들었다. 12시가 가까웠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튿날 부옇게 밝아오는 창 밖으로 항구의 모습이 다가왔다. 밤새 항해한 배가 어느덧 하카타(博多)항에 접근하고 있었다. 선내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하선하여 입국수속을 하였다.
큐슈 동북단에 위치한 하카타(博多)는 이름대로 상업도시였다고 한다. 본래 후쿠오카(福岡)와 별도의 도시였으나 현재는 후쿠오카시로 통합되어 나가강을 중심으로 동부 지방을 하카타, 서부지방을 후쿠오카라고 하는데 하카타 지역은 지금도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라고 한다.
오호리 공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오호리(大濠) 공원으로 이동했다. 오호리는 이름대로 큰 해자 형태의 인공 호수이다. 호수 중앙에 한 줄로 길게 박혀있는 나무 말뚝 위로 희고 검은 새들이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나의 호수 안에서도 낚시를 허용하는 구역과 금지하는 구역이 구별되어 있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 속에서 물고기들은 이리저리 오갈 텐데…. 물 위에 떠있는 까마귀들 사이로 유유히 유영하는 한 마리의 백로가 시선을 압도했다. 졸지에 다른 새들을 무색케 하는 백로의 자태에 한창 흥행 중인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오버랩 되었다.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외모가 주는 프리미엄은 무시할 수 없구나. 기온이 영상 20도 정도는 되는 듯 했다. 기후가 온화하여 호숫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봄꽃들의 해맑은 미소도 좋았지만 공원 전체가 얼마나 청결한지 쓰레기 부스러기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동남아의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보았던 불결한 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선진 시민 의식의 한 면을 발견했다. 선진 시민 의식은 거리에 불법 주차 차량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텐만구(千滿宮)
텐만구(千滿宮) 경내에 있는 합격 기원 분홍 쪽지와 나무패
이어 다자이후(太宰)로 이동하여 텐만구(千滿宮)를 찾았다. 이 곳은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眞)를 모시는 신사라고 한다. 입구부터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분홍 쪽지들이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다. 현재의 본전은 1591년에 건축한 것이라고 하며 본전 중앙에는 참배객의 모습이 비치는 큰 거울이 있다고 하는데 신사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방문한 것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치고 경내에 피어 있는 화사한 매화와 어마어마한 녹나무의 위용에 눈길이 끌렸다. 특히 오래된 녹나무를 자르거나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둔 채 회랑을 지은 것에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의 명물이라는 매화떡(梅花餠)을 맛보고 텐만구를 빠져 나와 기념품점을 기웃거렸다.
텐만구(千滿宮) 입구의 기념품점
텐만구(千滿宮) 입구의 매화떡(梅花餠)을 파는 상점
아가자기하게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다 발견한 관광안내서에서 다자이후가 지쿠시만요(筑紫万葉)의 고향이고 일본의 전통 시가(詩歌) 만요(萬葉)의 무대인 간지온지(觀世音寺)가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정에 포함되지 않아서 가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사진첩을 사는 것으로 달랬다. 옛 시가 문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중국의 ‘시경(詩經)’, 일본의 ‘만엽집(萬葉集)’을 능가하는 우리의 향가집 ‘삼대목(三代目)’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소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못난 후손들은 조상의 빛나는 유산을 지켜내지 못하고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실려 있는 겨우 25수의 향가로 옛 영화를 짐작할 뿐이다. 우리가 섬나라라고, 야만족이라고 무시하던 민족은 자기 것도 지키고 남의 것도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키우지 않았는가? 임진왜란 당시에 끌고 간 우리 도공들로 하여금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하게 했고, 오늘날에는 현대화된 생활자기가 ‘노리다케’나 ‘나루미’라는 상품명을 달고 세계의 명품 식기 대열에 오르고 있다.
구마모토성(熊本城) 망루
구마모토성(熊本城) 천수각 입구
다음 방문지는 일본 3대 성의 하나라는 구마모토성(熊本城)이다. 이 성은 큐슈 중앙의 구마모토현에 있는데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를 침략한 선봉장 중의 한 사람인 가토 이요마사가 7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올해 축성 400년을 맞았다. 예전의 구마모토성은 3층이나 5층짜리 망루가 죽 늘어선 난공불락의 거대한 요새였다고 하나 지금 남아 있는 창건 당시의 망루는 우토 아구라(宇土櫓) 뿐이다. 망루라고 하지만 규모가 커서 차에서 내려 바라 볼 때는 그것을 천수각으로 착각했다. 천수각은 서남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60년에 복원한 지상 6층 건물로 현재는 성이나 영주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6층 전망대에 오르면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인다는 가이드의 말에 내부 중앙의 좁은 계단을 돌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시가지의 모습을 일별하고 내려오면서 부지런히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니 트리나 폴러스가 지은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오르니까 맹목적으로 기를 쓰며 올라가는 애벌레처럼 전시물 관람은 건성이고 올라가는 일에 열중하다가 마지막에는 허탈해 할 것이다. 자칫 우리의 삶 자체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성을 나오며 입구에서 성을 소개하는 일본어 소책자에 기념 스탬프를 찍었다. 차에 돌아오니 가이드가 한글로 적힌 똑같은 소책자를 건네준다. 일본에서도 어디를 가나 안내판에 한글이 보인다. 대체로 일본어, 영어, 한글이 나란히 적혀 있거나 영어 대신 한자가 적혀 있는데, 심지어 어떤 화장실에서는 한글만 적혀 있는 것도 있었다. 출입국관리소에서부터 일본인 직원들이 어색한 발음의 한국어로 말을 걸었고 면세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인 상대로 그만큼 소득이 있다는 것이리라.
구마모토 시내에는 노면 전차가 도로 중앙을 가로 지른다. 강우량이 많은 지역이어서 습도를 고려하여 목재를 많이 사용한 낮은 건물들, 검정색 지붕에 회색이나 연미색 벽이 만들어 내는 구마모토의 인상은 차분한 무채색으로 남는다. 모든 건물을 지을 때 미적 감각을 고려하는 아트 폴리스(예술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소산 분화구를 볼 예정이어서 오늘 숙소는 아소(阿蘇)에 있는 전통 온천 호텔이라고 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산중턱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산간마을의 집들도 그만그만한 크기의 단정한 일본 전통 가옥들이다. 경관이 준수한 지역에는 어김없이 국적불명의 펜션이나 별장이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는 우리 나라의 모습과 확연히 달랐다. 국민 소득이 높은 나라이면서도 도시나 산간이나 한결같이 전통을 벗어나지 않는 건물 외관에서 오히려 그들만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소 지역은 산의 중턱까지만 나무가 자라고 그 위로는 풀만 덮여 있었다. 깊은 산속인데도 철도가 놓여 있고 두세 냥짜리 미니열차가 다녔다. 친절한 일본 철도다.
우리 일행은 일본 천황 내외가 묵었다는 아소 가도만(角萬) 호텔에 투숙했다. 로비에 천황 내외가 사용한 다기가 진열되어 있는 이 호텔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 5층 건물로 규모는 작고 낡았지만 료칸(일본 전통 여관)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호텔 객실은 화실(和室)이다. 여기서는 일본 전통식에 화(和)자를 쓴다. 화실(和室)에는 방에는 짚으로 만든 다다미가 깔려 있다. 어린 시절에 일본인이 살다간 적산 가옥을 많이 보았기에 다다미를 처음 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흔하지 않은 모습이다. 다다미는 파르스름한 빛을 띄는 새 것이어서 정갈해 보였다. 방 중앙의 탁자에는 차를 마실 수 있게 다기를 준비해 놓았다. 객실 내에 비치된 유카타를 입고 하오리라는 짧은 겉옷을 걸쳐 보았다. 온천 호텔에서는 이 복장으로 호텔 내외를 산책하거나 온천탕에 간다고 한다. 우리는 유카타와 하오리 차림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화요 예배를 드리고, 박종심 집사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순서를 진행했다. 일본 옷을 입고 걷는 모습을 보니 처음에는 성큼성큼 걷던 이들이 이내 일본인처럼 종종 걸음을 친다. 옷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가도만(角萬) 호텔 이름을 넣어 디자인한 하오리
밤에 호텔 건너편에 있는 훼미리마트에 갔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며 빵과 과자와 유제품을 골랐다. 먹다가 모두 뒤로 넘어갔다. 우유인 줄 알고 산 것은 달착지근한 쿨피스 맛이 났고, 라면과자는 너무 짜서 먹기가 곤란했다. 식빵은 성공이었다. 물건을 꽤 많이 사 간 다른 팀은 어땠을까?
피부병, 관절염, 부인병에 좋다는 유황온천탕에서 여독을 풀었다. 같은 방원과 함께 문 닫을 시간이 임박해서 내려갔더니 실내에도 노천에도 아무도 없었다. 희희낙락하다가 지난 밤 배에서 옆 방에 묵었던 신장철 선생님이 내 이야기 소리를 다 들었노라는 말이 생각나 목소리를 줄였다. 절묘한 시간 선택의 잔머리는 다음날 아침에도 적중했다. 이번에는 아침 식사 시간 직전을 택했다.
호텔의 대온천탕인데 탕은 실내에 하나, 노천에 하나뿐이다. 우리 나라의 동네 목욕탕보다도 소박하다. 탈의실에 락커가 없다. 그냥 대바구니에 옷을 담아 선반에 나란히 얹어 두었다. 그래도 분실 사고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선생님은 해외여행하면서 방에 여권 가방을 두고 다닌 나라는 일본이 처음이라고 했다.
요와 이불은 목화솜을 두었는지 푹신하고, 베개는 메밀 껍데기를 넣었는지 쾌적했다. 편안한 잠자리였다. 누워서 저녁 예배 때 정성원 목사님이 하신 설교 말씀을 떠올렸다.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할 때 바나바가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와서 어렵고 불편한 일이 있었지만 지혜롭게 극복하고 선교에 활력을 얻어 마가가 주 안에서 큰 인물로 성장하였다. 서로 격려하며 용기를 주는 신앙생활이 참으로 중요하다. 고교 시절 학교의 분위기에 감화를 받아 목사님의 동기 중 10여 명이 목회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창 시절 모본이 되었던 은사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나도 학생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진실한 길잡이가 되고 싶다는 소망들을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은 벌써 12시 반. 내가 입을 다물어야 옆 사람이 자겠구나. “나 이제 합죽이가 될게.”
셋째 날, 느지막하게 아침을 먹고 10시에 개장하는 원숭이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호텔을 나왔다. 조련사와 원숭이가 한 팀을 이루어 공연을 펼쳤다. 이 날은 작고 앙증맞은 원숭이 팀과 크고 무표정한 원숭이 팀이 출연하여 교대로 부동자세, 절, 공 굴리기, 공 굴리며 계단 오르내리기, 높이뛰기, 멀리뛰기, 장대 짚고 걷기, 다양한 경례, 코미디 등을 보여주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쿠사센리(草千里)에서 바라 본 아소산 분화구
쿠사센리(草千里)에서 아소산 분화구 출입 통제가 해제되기를 기다리며
아소산 일대는 ‘아소쿠주 국립공원’인데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어느 곳을 보아도 웅대한 자연이 펼쳐져 있다. 빽빽한 삼나무 숲을 지나자 왕릉 같은 것이 나타났다. 고메즈카(米塚)라고 하는데 아소의 신이 수확한 쌀을 쌓아 둔 것이 언덕으로 변했다고 한다.
아소산 분화구를 보러 가는 도중 가이드는 화산에 오를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가스 분출량이 많아 접근을 통제했다. 기다리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하여 쿠사센리(草千里)에서 멀리 뿜어 오르는 화산연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초원을 산책하기도 하였다. 쿠사센리(草千里)는 말 그대로 ‘천리에 걸쳐 넓게 펼쳐진 초원’으로 옛날에 화산의 분화구였던 호수 주변으로 직경 약 1km의 넓은 원형 초원이 있어서 말과 소를 방목하는 곳이라는데 지금은 겨울철이라 호수의 물도 많이 말랐고, 마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물이 마른 호수 바닥은 검은색이다. 화산 지역이기 때문이리라. 점심을 먹고 등산 버스의 종점까지 올라가 통제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주차장에 있는 빨간 승용차 주변에서 김미려의 ‘사모님’을 패러디하며 갖은 모양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통제가 풀리지 않아 차를 돌렸다. 가이드는 한국어판 안내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아소산은 세계 최대급 칼데라 화산으로서, 네코다케, 다카다케, 나카다케, 기지마다케, 에보시다케로 이루어진 아소고가쿠(阿蘇五岳)가 마치 석가가 자는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그 중 나카다케(中岳)는 화산 연기를 내뿜으며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활화산을 직접 보는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일본인의 철저한 안전 의식에 감탄했다.
유후인과 벳부가 있는 오이타(大分)현으로 가는 국도는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이다. 일본의 국도는 대체로 2차선이란다. 그것도 가급적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길을 낸단다. 도중에 있는 고원지대의 휴게소에서 이 지역의 특산물이라는 따끈한 우유를 사 마셨다.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났다. 우유 한잔에 300엔.
유후인 민예품 거리에서
유후인(湯布院)은 온천과 예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여행 안내 자료에는 개성 있는 카페와 미술관이 소개되어 있지만 가이드는 골목 하나만 겨우 보고 나올 시간을 주었다.
가장 일본적인 마을이라는 유후인의 민예품 거리를 걸어 긴린코(金鱗湖)까지 갔다. 석양이 비친 호수면을 뛰어오르는 붕어의 비늘이 금빛으로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규모는 작으나 산과 호숫가 풍경이 물에 비쳐 아름다웠다. 호수며, 상점 간판이 사진작가가 공들여 찍은 그림엽서 같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벳부 풍경
해안 마을 벳부(別府)에 접어들자 여기저기서 온천의 수증기가 솟아오른다. 시가지에서도 산간에서도 모락모락 김이 난다. 우선 유황재배지에 들러 유황의 꽃인 유노하나(湯の花) 재배 과정을 보았다. 유노하나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유황온천 성분의 입욕제이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가격이 국내 쇼핑몰보다 비싼 듯하다.
유황의 꽃인 유노하나(湯の花) 재배 광경
다음은 벳부의 지고꾸 메구리(地獄巡禮)이다. 열탕과 온천 증기가 분출되는 모습이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바다지옥(우미 지고꾸, 海地獄)을 찾아 갔다. 바다지옥은 열탕이 시원한 코발트 블루 빛을 띠지만 실제 온도는 98℃나 된다고 한다. 우미 지고꾸에는 온천수의 열기를 이용해 온실을 가동해 열대 지역의 수련을 기르고 있다. 상점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열탕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한 골짜기 안에서 각각 다른 성분을 함유한 온천이 공존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 지고꾸의 유황물로 삶은 계란을 맛보았다. 물 온도가 높아서 5분이면 삶은 계란을 만들어 낼 수 있단다. 오래 익히지 않아서인지 우리 나라 사우나에서 파는 구운 달걀과 달리 잘 익은 갈색이 아니라 반숙으로 적당히 익은 하얀 달걀로 유황 특유의 고약한 냄새도 배어들지 않았다.
바다지옥(우미 지고꾸, 海地獄)
여기저기서 증기가 분출되는 바다지옥(우미 지고꾸, 海地獄)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벳부만에 있는 로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노천탕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서 온천욕을 하며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한다. 호텔 객실에서 차를 마시며 탁자에 놓인 과자를 먹다가 화장대에 5% 할인권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구내 기념품점에서 쓸 수 있는 할인권이었다. 자연스럽게 그것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많은 상품들 중에 객실 탁자에 있던 과자와 호텔 온천장에서 써 본 샴푸, 린스 등에 눈이 갔다. 온천장마다 그 지역 특산물인 숯이나 마유(馬油)로 만든 목욕용품들이 비치되어 있어 직접 사용해 볼 수 있게 했고, 받침대에는 매점에서 인기리에 판매중이라고 적어 놓아 은근히 구매욕을 자극했다. 결국 식구들에게 줄 선물로 객실에서 맛 본 전통과자를 몇 개 골랐다. 광고의 기회를 잘 포착하는 일본인의 세련된 마케팅 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밤 11시경 혼자 온천에 내려갔다. 노천탕에는 형형색색의 장미꽃을 띄워 놓아 귀한 대접을 받는 듯한 o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객실에 돌아와 이번 여행을 회상했다. 어디를 가나 잘 가꾼 삼나무 숲,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도로 건설을 통해 친환경 국토 개발이 부러웠다. 과거 우리의 새마을운동 시절에 펼쳐졌던 ‘하와이로 여행가기’라는 농촌 소득 증대 운동과 현재 진행 중인 지역 특산품을 개발하는 1村 1品 운동, 도시인들과 시골이 결연하여 펼치는 소 한 마리 키우기 운동 등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비전 경영이 돋보였다. 다시 「모래톱 이야기」가 떠올랐다. 조마이섬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오늘날도 한미 무역협정에서 또 다시 홀대 받는 우리의 농촌 현실과 비교하다 보니 새벽 1시 반. 이젠 누워야지.
넷째 날, 노천탕에서 일출을 보려다 식사 시간과 겹치게 되어 호텔 정원에서 일출을 맞았다. 열대 나무 조경, 멋을 부린 종탑과 조각품 사이로 화려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일출 사진을 찍을 때는 후레쉬를 켜는 것이 상식이라는데 기계치라서 용감하게 셔터만 눌러댔더니 일출만 찍은 사진은 그럭저럭 볼 만 한데, 인물이 들어간 사진은 사람이 검게 나와 버렸다.
로얄 호텔에서 맞은 일출
8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안에서 아침예배를 드렸다. 사회 심재웅, 기도 권형준, 설교 신장철, ‘청년 예배’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설교를 부탁받았다는 신장철 선생님은 펠로우십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다윗과 요나단, 에녹과 하나님의 관계와 같은 가족, 친구, 사제가 되어 하늘까지 동행하자는 내용으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설교였다. 항상 준비된 젊은 전도자의 설교를 들으며 그가 소망하는 영어 수업을 통한 복음 전파가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를 기원했다.
후쿠오카타워
하카타 항에 가기 전에 후쿠오카 앞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인공 신도시 모모치에 들렀다. 한국계 기업인으로 야후, 소프트뱅크 등 일본 굴지의 대기업을 이끌고 있는 손정의 사장이 사 들여 프로야구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훅스’의 본거지로 사용한다는 야후돔을 중심으로 돛대 형상을 본뜬 234m 높이의 후쿠오카타워와 상업 시설인 훅스타운이 있고, 인공 해변 공원이 펼쳐졌다. 동화 속 그림 같은 집들을 지나 모래사장에 널판으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해변을 거닐었다.
모모치 인공 해변
모모치에는 큐슈의 다른 지역과 달리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했다. 매립지라서 지반이 약하지만 더 깊게, 더 튼튼하게 시공하였다고 한다. 지진이 많은 일본은 각 현마다 방재(防災)센터가 있다. 학생들이 방재 센터를 찾아 체험학습을 통해 지진과 각종 재난에 대처하는 연습을 철저히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구마모토나 후쿠오카 시내에서 건물마다 붉은색 역삼각형 표지가 있던 것도 생각났다. 화재나 지진 등의 비상시에 구조차가 이 지점에 접근하니 여기로 모이라는 비상탈출구 표지판이란다. 우리도 예전에 민방위 훈련 때 공습 경보나 화생방 경보가 발령되면 수업하던 교실을 빠져 나와 인근 숲이나 운동장가로 대피하거나 교실에서 책상 밑에 들어가 눈과 귀를 막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는 훈련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날은 교실에 그대로 앉아 방송만 청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보다 철저한 재난 대비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여행에 교육현장을 답사하는 일정은 없었으나 선진국이 주는 질서와 제도와 배려를 맛보며 교육현장에 접목할 부분을 많이 발견했다.
부산과 하카타를 오가는 뉴카메리아호
낮 12시, 하카타 항에 정박 중인 뉴카메리아호에 다시 승선했다. 낮시간이라 다인실로 예약이 되어 있었지만 1인당 1,500엔씩을 추가로 지불하고 2인실로 옮겨 오붓하게 돌아왔다. 배는 오후 5시 30분경 부산항에 입항했다. 서울행 KTX에 몸을 싣자 4일치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 왔다.
일본 큐슈 여행 일정표
2007년 2월 19일 〜 2007년 2월 22일
일 자 |
지 명 |
시 간 |
일 정 |
제1일 |
광 주 부 산
|
12:00 18:00 19:30
|
광주 출발 부산 도착 출국 수속 후 승선 선내 석식 후 휴식 |
제2일 |
후쿠오카
다자이후
구마모토
아소산
|
07:30 전일
|
선내 조식 후 하선 / 입국 수속 물의 공원 오호리 공원 관람 다자이후 이동 학문의 신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텐만구 관광 큐슈 중앙부의 교통 경제의 거점인 구마모토로 이동 일본의 3대 명성의 하나인 구마모토 성 관람 활화산과 초목이 어우러진 아소산 이동 아소 가도만 전통호텔(1급) 투숙 및 온천욕 |
제3일 |
아소산
유후인
벳 부
|
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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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조식 후 세계 최대의 복식 칼데라 분화구 아소산 분화구 에보시다케의 대초원 구사센리 관람 유후인 이동 NHK가 선정한 가장 일본적인 마을 유후인 관람 일본 3대 온천지의 하나인 벳부 이동 유황재배지 유노사토 관람 코발트색을 띤 98도의 용출수 바다지옥 온천 순례 벳부만 로얄호텔(특급) 투숙 및 온천욕 |
제4일 |
후쿠오카
부 산 광 주 |
08:00
12:30 18:00 23:00 |
호텔 조식 후 큐슈 제1의 도시 후쿠오카로 이동 모모치 인공신도시 주위 관람 하카타 항구로 이동 / 출국 수속 및 승선 후쿠오카 출발 부산항 도착 / 출발 광주 도착 |
(2007년 2월 문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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