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제2관문 조곡관
조선 선조 27년(1594년)에 조령 세 개의 관문 중 제일 먼저 건설되었다.
조곡 폭포
폭포에서 내려온 물의 일부는 나무 홈통을 타고 흐른다.
나무의 길이만큼 흐르고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조선 초기 태종 때 '조령로'를 개척한 이래
숱한 사람들이 세대를 이어 이 길을 걸어간 것처럼.
응암 (매바우) 폭포
물 속에 군무하는 물고기들
꾸구리는 길이 10cm 정도의 멸종위기 민물고기라는데 저 놈이 그 놈인지.
꾸구리 바위 밑에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큰 꾸구리가 살고 있어
바위에 앉으면 꾸구리가 움직여 바위가 흔들렸다고 한다.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하기까지 했다는군.
교귀정과 소나무
교귀정은 경상도 땅에 첫발을 내디딘 경상감사가 관인을 넘겨 받던 교인처
조령원터
원이란 지금의 여관과 같은 곳.
상인이나 여행자가 산골짜기 외딴 곳에서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원은 맹수의 두려움, 도둑의 염려 등을 덜어주기에 안성맞춤이었겠지.
백 년 전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라는 한 영국 여성이 조선을 여행하며 쓴 여행기가 있다.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그녀는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으로 1893년에 제물포항에 노구를 이끌고 도착하여
11개월에 걸쳐 조랑말을 타고, 조각배를 타고, 때론 걸어서 한반도를 직접 여행했다.
당시에 여인들이 여행 중에 머물 여관이 거의 없던 터라 때로는 민가의 안방에 묵기도 했던 그녀는
방안에 냄새나는 메주나 이 때문에 당황했다.
외국인을 처음 본 마을사람들의 모습, 누추한 주막집의 풍경, 시궁창으로 더럽혀진 서울의 모습 등이
서양 여성의 눈에 충격적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고즈넉한 시골 풍경, 푸른 하늘과 맑은 날씨,
금강산의 절경, 눈 덮인 겨울 풍경 등을 경험하면서 이 영국 여인은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삶에 동정심과 애정을 드러낸다.
조령원터에서 그 옛날 행인의 땀내와 마굿간의 여물 냄새가 뒤섞이고
주모와 길손 간에 시끌벅적한 대화가 오갔을 광경을 떠올리며 비숍 여사의 놀라움을 짐작한다.
'지름틀바우'
기름틀의 누름틀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
'지름'은 '기름'의 경상도 방언
문경 일대의 지질 구조도
돌 전문가인 한 총무의 설명에 의하면 한때 문경이 석재 산지로 주목 받았으나,
지금은 중국 석재가 종류도 다양하고 생산량도 많으며 기술력도 좋아 세계 시장이 그리로 집중된다고 한다.
특히 복건성 샤먼 지역이 중심지란다.
1관문 가까이 이르자 지압 보도와 발씻는 곳이 나온다.
맨발 도보 여행자에 대한 배려다.
송덕비가 즐비한 곳에 비석이 아니라 철비(鐵碑)가 서 있다.
의사이자 화가인 그는 섬세한 눈으로 피사체를 담는다.
지친 명희를 위해 에너지를 보충해 주고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부축한다.
흙길에 떨어진 낙엽도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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