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는 블타바 강을 중심으로
강의 서쪽에는 왕립 정원, 프라하의 성 등이 있고
강의 동쪽엔 12세기에 조성된 구 시가지와 14세기의 신 시가지가 있다.
특히 노베메스트(신 시가지)의 건축물들로 인해 프라하는 '100개의 뾰족탑을 가진 도시'로 불린다.
체코의 작곡가로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안토닌 드보르자크, 레오슈 야나체크가 있으며,
그들을 기념하는 음악제가 매년 봄축제 때 개최된다.
한편 문인은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야로슬라프 하셰크 등이 저명하다.
프라하 시민회관
프라하 시민 회관은 1912년 개관한 문화 시설이다.
연주회장과 전시장, 레스토랑 등 다양한 문화 및 놀이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건물 내에 있는 1200 석을 갖춘 공연장인 스메타나 홀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이 선언된 역사적인 장소인데,
체코의 음악 축제인 <프라하의 봄(Pražské jaro)>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개막식에는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의 작품 <나의 조국(Ma Vlast)>을 연주한다.
화약탑
1475년 지금의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 성문 가운데 하나이자, 대포 요새로 건설되었다.
이후 총기 제작공이자 종(鐘) 주조공인 야로스(Tomas Jaros)의 거처 겸 작업실로 개축되었다가,
루돌프 2세 때인 17세기 초에 연금술사들의 화약창고 겸 연구실로 쓰이면서 화약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엔틱카를 타고 프라하 시가지를 1시간 가량 누볐다.
존 레논 벽에도 가고 언덕 위에 있는 프라하 성에도 올랐다.
겉보기엔 꽤 그럴 듯한 클래식 자동차였으나
마차를 탄 듯 의자에 쿠션이 없어 돌길의 충격이 허리로 전해졌고,
차량에서 나오는 매연에 숨쉬기가 거북했다.
보행 중인 시민들에게 민망할 지경이었다.
프라하 당국은 왜 이런 사업을 허가했을까?
로마에서 대형 버스의 시내 진입을 불허하는 대신
여행자들이 8인승 밴을 이용하게 한 것은 수긍이 가는데...
존 레논 벽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이던 시절인1980년대에 자유를 원하는 청년들이
몰타 대사관 담벼락에 존 레논의 노래가사를 적고 존 레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사관은 치외법권이라서 체코 정부가 낙서를 지울 수 없었고,
이후 계속 자유와 평화를 원하는 이들의 낙서가 더해져 지금의 존 레논 벽이 되었다.
프라하 성 가는 거리의 시민들 모습
프라하 성
9세기 말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江)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聖)비투스대성당·성조지바실리카·성십자가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 본 시가지
시가지를 배경으로 셀카~
구 시가 광장에 있는 얀 후스(Jan Hus) 동상
구시가 광장 주변에 얀 후스 동상, 구시청사, 틴 교회(Tynsky chram), 킨스키 궁전 및 성 니콜라스 교회 등이 있다.
11세기부터 주요 무역로의 교차 지점으로 이곳에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얀 후스는 1370년경 보헤미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402년 프라하 카렐대학교(Univerzita Karlova v Praze, Charles University) 총장이 되었다.
가톨릭교회의 세속화 및 면죄부 발행 등을 비판하여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했으며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Council of Konstanz)에서 종교재판을 받아 화형에 처해졌다.
얀 후스의 종교개혁 운동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보다 100년 앞서 전개되었다.
얀 후스 동상은 얀 후스의 처형 500주년이 되는 해인 1915년에 세워졌으며,
동상에는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지켜라”라고 한 얀 후스의 유언이 새겨져 있다.
구 시청사
2차 대전 때 대부분 소실되고 시계탑 등 일부만 남음.
틴 성당
400년간 후스파의 거점 교회로 종교개혁을 실천하다가 1621년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
천문 시계탑
구시가 광장의 남서쪽에는 구시청사가 있는데 건물의 일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었지만
벽면의 천문시계(Orloj)는 무사했다.
시계를 그린 원반의 네 귀퉁이에 인물이 조각되어 있다.
허무와 탐욕, 죽음과 낭비를 상징하는 인간의 모습일까?
15세기에 설치한 이 시계탑은 매 시간마다 원반 위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그리스도의 12사도를 상징하는 인형들이 차례로 나왔다가 사라지면서,
맨 마지막에는 시계 위쪽의 닭이 울면서 시간을 알려 준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마침 수리 중이라 종 치는 모습은 가림막에 디지털 영상으로 재현했다.
카렐교는 사람들로 홍수~
카렐교 양 끝에 세운 탑
다리의 시작과 끝 부분에 놓인 탑은 본래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웠단다.
카를4세 동상
블타바 강 위에 놓여 있는 카를교는 1357년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세에 의해 착공하여
5세기 초 1402년에 완공하였다.
다리의 길이는 총 520m, 폭 9.2m로 프라하 성과 구시가지를 이어 준다.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강.
그곳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카를교는 구시가지와 프라하성을 연결해주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성인상이 다리 양쪽에 가지런하다.
성 얀 네포무츠키, 성 루이트가르트, 성 비투스 등의 조각상 중 성 얀 네포무츠키 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다리의 성인 성 얀 네푸무츠키 동상
그는 바츨라프 4세가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동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어, 동상 하단은 사람들 손길에 반들거린다.
카렐교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또 다른 성인상
16개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 카렐교는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해 저물 무렵의 프라하 성
루돌피눔 음악당
정장을 한 관객들이 모여든다.
음악당 앞 드보르작 동상
프라하 성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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