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벗과 함께

그리움이 사무치면 갈증이 되는 것을...

달처럼 2011. 3. 15. 20:25

 일요일인 지난 13일 오후,

급한 일이 있어 분주히 움직이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기순이 목소리다.

이게 얼마만인가?

"선리야, 나 휴가 내서 한국에 와 있어.

수요일에 떠나는데 떠나기전 얼굴 한 번 보자.

지금 일산 오빠네 집에 있거든. 지금 여기로 올 수 있니?"

당장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아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순간 이어지는 기순이의 다음 말

"나, 내일 저녁에 태웅이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그 때 같이 만나자."

 

기순이는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의 끝에는 언제나 따라 올라오는 친구다.

 

기순아,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린 참 오랫동안 엽서를 주고 받았지.

유난히 솜씨 좋은 네 엽서는 매번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해 주었었어.

그 때 서로 주고 받은 이야기의 내용은 희미해졌어도

형형색색으로 꾸민 엽서 속의 이미지와

그 속에 담긴 우정은

세월이 더 많이 흐른 후에도 잊을 수가 없을 거야.

 

직장 생활하랴,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랴

많이 바빴을 땐 잠시 소식이 끊기는 적도 있었지만

그리움이 사무쳐 갈증이 나면

전화로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지나는 길에 불쑥 들러 얼굴을 보기도 했지. 

 

벌써 10년쯤 전일 거야.

내가 태릉에 있는 한국삼육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이고,

너는 뒤늦게 대학원 다니느라 인천집에서 한남동을 오가며 바쁘게 살던 시절 말이야.

네가 마침 태릉선수촌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연락 없이 우리 학교에 와서 기다리던 때가 있었지.

그 날따라 동료들과 외부에 나가 식사하고 오느라

오후 수업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야 학교에 들어서니 

네가 1층 로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지.

"아이고,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니?

나 바로 수업 들어가야 하는데 어쩌니?"

손을 맞잡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괜찮아. 이렇게 얼굴 봤으니 됐어."

그러면서 넌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어.

 

얼마 후에 걸려 온 전화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했지.

미국. 나에게는 너무 먼 나라다.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혼자 씩씩하게 미국 땅에 발을 딛고, 취업에 성공한 당당한 한국인.

이따금 동문회 사이트에 올라 온 미주 동문들 사진 속에서 네 안부를 확인했어.

 

3년 전 정례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

태평양 너머에서 너는 슬픔을 가누기 힘들어 했지.

그러잖아도 정례 생각이 나서 그 즈음 친구들과 그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비보를 듣게 되어 믿기지가 않는다고. 

살아 있을 때 더 정겹게 해주지 못해서 마음 아프다고.

언제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정례 잠든 곳에 같이 찾아가자고.

 

정례를 보내고 회한이 사무치던 차에 함께 울먹이며 애통해 하는 친구가 있기에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거 너 아니? 

 

지난 해 2월 태웅이가 올린 글에서

네가 '헐리우드 장로병원'(차병원 계열 병원)의 샤이닝 스타(shining star)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대견한 친구를 두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가슴이 벅찼어.

‘Very nice, Excellent, Always greets me, Pleasant, smiles,

Positive energy, nice to everybody, Happy’

네가 동료들과 환자들에게서 받았다는 편지 구절들이 현재의 너를 말해 주는구나. 

자랑스럽다, 친구야.

 

이번엔 시간 없는 태웅이의 사정을 고려해 9기 선배들과 같이 식사하느라

가뜩이나 짧은 만남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돌아 올 때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친구란

늘 함께 지내지 않아도,

한 동안 소식이 뜸하더라도,

불현듯 갈증이 나면 만나서 갈증을 풀고

충전된 기운으로 세상 살아갈 힘을 얻는 거라는.

 

밝은 미소로 친구를 환영해 준 아름다운 여인, 선미

사업 확장과 학업 병행의 바쁜 와중에도 변함없이 국내외 친구들을 챙기는 김 兄, 태웅

정말 고맙소.

 

김태웅 사장의 동양문고 사무실에서

 

9기 선배님들과 함께 

(뒷줄 오른쪽부터 전 동문 회장님이셨던 박영신 선배님, 현 미주동문 회장님이신 이태훈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