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서울역사문학기행

정동 기행 2-1 세월을 따라 떠나갔지만... 천경자, 이영훈, 이동백

달처럼 2011. 6. 12. 18:43

 

'서울역사문학기행 (서울 정동 2)'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시작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은 르네상스식 건물인 전면부와 현대식 건물의 후면부가 조화를 이룬 건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법원)인 평리원(한성재판소)이 있던 자리에 일제에 의해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광복 후 대법원으로 사용 되었으며,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옮겨간 후 2002년부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사진 언덕길은 오래된 수목들과 꽃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뜰 사이로 나 있다.

길 가에는 '김장생, 김집 선생 생가터', '이황 선생 집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자리한다.

이 날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는 몇 개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데이빗 로젯츠키(David Rosetzky), <당신없이(Without You)>, 2003/2004, 싱글 채널 디지털 비디오, 10분 40초

 

《한국․호주 교류전: 호주_디지털 도시초상(Korea∙Australia Exchange Exhibition: Australia_Digital Urban Portraits)》展

한국∙호주 수교 50주년 기념교류전의 일환으로 현재와 미래 도시 이미지와 인물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파트1에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고 가까운 미래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물들의 정체성과 관계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날로그 시대와는 다른 표현들이 다루어지고 있다면, 파트2 <지금 그리고 언제 호주의 도시주의(NOW AND WHEN Australian Urbanism)>는 그러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각적 고찰이 담겨있다.

 

아직 생소한 분야여서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위의 그림 설명을 옮긴다.

'인물 초상과 관련하여 데이빗 로젯츠키(David Rosetzky, 1970)의 <당신없이(Without You)>(2003/2004)는 10분 40초짜리 비디오 작업이다. 얼핏 보면 인물의 포즈는 고전적이다. 전통적인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자세이다. 하지만 좀 더 살펴보면 얼굴의 피부가 초상의 대상인 인물의 피부가 아닌 부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한 인물의 정체성이 다른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영향 받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실제 그는 작업에 있어서도 디지털 비디오 장면들로부터 정지 이미지들을 만들고 그것들을 메스를 가지고 잘라내고 꼴라주한 뒤 초당 2프레임으로 다시 찍어서 한 명의 인물 초상화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초상 표현 방법은 피부가 매끈하게 보이지 않고 잘라낸 부위가 드러나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게 한다. 마치 영화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s)>(1991)이나 <페이스오프(Face/Off)>(1997)에서 피부가 극중 인물들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완전히 다른 인물로 변신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없이>의 인물의 피부나 옷, 머리 등 일부분은 다른 인물의 부분들과 교체되어 꼴라주되어 초상 인물의 혼합된 정체성을 보여준다. 즉 이 초상을 통해 데이빗 로젯츠키는 한 인간의 정체성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임옥상, 독립문, 175x126cm, 캔버스에 유채, 1975원성원, 일곱살-오줌싸개의 빨래, 155x123cm, c-print, 2010

  임옥상, 독립문, 1975                                    원성연, 일곱 살 오줌싸개의 빨래, 2010

 

2층에서는 '서울, 도시 탐색전'이 열리고 있었다.

도시 공간이나 도시인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통해 도시와 우리 삶의 상관관계를 되짚어 본다.

임옥상의 그림에서는 단순 명료한 구도와 색상을 통한 강렬한 문제 제기가,

원성연의 그림에서는 사라져가는 유년기의 도시 뒷골목 기억이 읽혀진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1977 ,종이에 채색,43.5*36

 

학창 시절에 숙제를 하기 위해 천경자 전시회를 찾았었다.

꽃과 여인을 주제로 한 몽환적인 정서와 아프리카 기행을 소재로 한 원색의 생명력이 뇌리에 새겨졌다.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 는 그 시절 전시회 도록의 표지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뱀이 또아리를 튼 머리, 서늘한 눈빛, 긴 목이 그녀의 젊은 날의 자화상이라 했던가.

번뇌, 우수, 처연, 유혹 등의 단어의 끝에 '불굴'이라는 단어가 겹쳐진다.

2층 '천경자의 혼' 전시실에서는 그녀가 기증한 그림을 토대로 2002년부터 상설 전시하고 있다.

 

 

정동제일교회 사거리의 한 모퉁이에는 '광화문 연가'의 작곡가 이영훈을 기리는 노래비가 있다.


광화문 연가'는 지난 80년대 중반 암울하던 군부 독재시절을 바탕으로 탄생한 노래라고 한다.
이는 인기 시사만화가 심난파씨(본명 심민섭·56)의 풍자만화집 '광화문 블루스'를
바탕으로 구성된 연극의 주제곡이었으며, 노래의 원래 주인공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이문세가 아니라 당시 잠시 활동하다 사라진 최현주라는 가수였다.

그동안 일간지에 시사만화를 그려왔고 현재도 대전일보에 '꼬툴씨'라는 타이틀로
연재를 하고 있는 심난파씨는
지난 84년 6월부터 89년 1월까지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던
'가라사대'와 '심마니'를 각각 모 주간지와 일간지에 연재했다.
이 연재물은 <광화문 블루스>라는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86년 전위예술가
무세중씨의 권유로 연극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 연극은 지금은 타계한 코미디언 심철호씨가 주인공을 맡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연출했다.

 

연극의 주제곡은 이영훈씨가 작사·작곡을 맡았는데, 연극 무대에서는 최현주가
노래했고 나중에 이영훈씨와 콤비를 이룬 이문세가 리메이크했다.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
눈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노래비를 에워싸고 한 대중음악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연장인 원각사를 계승한다는 이념으로 건립된 정동극장으로 들어선다.

이곳에서는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근간으로 하고 한국 전통 가락과 소리, 전통 춤사위와 마당놀이의 요소를 가미한

창작 뮤지컬 '미소(美笑)'를 하루 두 차례 공연하고 있다.

 

 

 

 

동극장에는 원각사에서 활동하던 명창 이동백(1867~1950)의 동상이 있다.

충청 이북 지방 소리인 판소리 중고제 명창이다.

 

이동백이 유명하게 된 것은 노래는 물론 대단한 미남에 고종의 총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그의 소리를 듣기 위해 원각사의 공연 현장에 전화기를 설치하고 그의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이동백의 노래를 좋아하였던 고종은 그에게 당상관(堂上官)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의 벼슬을 하사한다.

소리꾼이 정3품의 벼슬을 제수 받는 것은 이동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김경식의 문학기행' 답사기에서 인용)

 

 

정동극장 뜰에서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겠지만'이라는 '광화문 연가'의 노랫말처럼

사랑도 가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도 떠난다. 

그것은 그리움이고 추억이다가, 더러는 그림으로, 대중음악으로, 소리로 문화라는 새 생명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