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서울역사문학기행

정동 기행 2-2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하라 - 중명전

달처럼 2011. 6. 13. 00:17

 

 

 

 

 

 

 

중명전 일원

 

중명전과 예원학교 일대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을 확장할 때에 궁궐로 편입되었다.

경운궁 본궁과 이 일대 사이에 이미 미국 공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별궁처럼 사용되었다.

중명전은 왕실 도서관으로 지은 2층 벽돌 건물이며, 정관헌과 독립문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I.Sabatin)이 설게했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을 비롯한 10여 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에 이 일대가 덕수궁에서 제외되면서 다른 건물들은 없어졌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비운의 현장인 동시에,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특사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 문화재청

 

 

 

중명전의 전시공간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유리가 깔려 있는 중명전의 바닥이다.

 

이 타일이 중명전 건축 당시의 바닥재이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유리를 깔아둔 것이다.

 

 

 

 

을사늑약의 복제본이다.

 

을사늑약은 전문과 5조로 되어 있다.

< 전문 >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는 두 제국을 결합하는 공동의 이익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국이 실제로 부강해졌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이 목적을 위해 아래에 열거한 조목들을 약속해 정한다.
< 1조 >
일본국 정부는 도쿄에 있는 외무성을 통해 금후에 한국의 외국과의 관계 및 사무를 감독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대표자와 영사는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의 관리와 백성 및 그 이익을 보호한다.
< 2조 >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전히 책임지며, 한국 정부는 이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격의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 3조 >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폐하의 아래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전적으로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해

서울에 주재하며 직접 한국 황제를 만나볼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일본국 정부는 또한 한국의 각 개항장 및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을 둘 권리를 가지되, 이사관은 통감의 지회 아래 종래 재한국 일본 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행사하며 아울러 본 협약의 조항을 완전히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서 처리할 것이다.
< 4조 >
일본국과 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과 약속은 본 협약의 조항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효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한다.
< 5조 >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할 것을 보증한다.

 

 

 

 

 

 

 

 

 

 

 

 

 중명전 2층 홀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거하던 곳이다.

기행 회원들이 고종 황제 어새를 들여다 보고 있다.

 

고종 황제 어진

 

 

대한제국 고종 '황제 어새'

고종이 1997년 이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거북이 모양 어새이다.

고종이 비밀리에 보내는 편지나 문서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의 은행에서 많이 썼다고 해서 이름이  뱅커스램프.

오래된 디자인인데 요즘 다시 인기를 얻어 복제품이 많이 나오는 디자인이다.

중명전에서 신경써서 근대풍의 물건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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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명전 발코니

 

 

 

정동제일교회에서 이화여고 방향으로 이어진 정동 길에 붉은 벽돌로 지은 <구신아일보사 별관>이 있다.

이 건물의 외벽은 중국 상하이에서 가져온 붉은 벽돌로 쌓았다

구한말에는 세무총사(현재의 관세청에 해당) 사옥으로 사용했다.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의 사무실이 바로 이 장소에 있었다.

그 뒤 미국기업 싱어미싱회사(Singer Sewing Machine Company)의 한국지부 사무실과 그 상사원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했다.

1963년 신아일보사가 매입하여 1980년 10월 신군부의 언론기관통폐합 조치로 <신아일보>가 ,<경향신문>에 통합되기 전까지

신아일보사 별관이었다. 

이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이며, 슬라브(Slab) 구조 및 원형철근 사용 등 일강강점기의 건축기법이 잘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