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서울역사문학기행

정동 기행 2-3 꺼지지 않는 별, 유관순 열사

달처럼 2011. 6. 13. 00:48

 

 

 

 

 

 

유관순 기념관 앞 뜰의 유관순 동상

아우내의 새

역사의 별이 되다.

 

 

1902년 12월 16일 충남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에서 출생

1915년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 국비생으로 편입

1918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

 

 

1919년 3월 만세운동 참여

 

 

1919.4.1. 아우내 만세운동 주도

1920.3.1 서대문형무소에서 만세운동 주도

 

 

1920.9.28.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동상을 바라보며 그의 생을 조명하고, 이 시대의 민족혼을 생각한다.

 

 

쓰러지는 조국을 붙잡아 세운 이 땅의 풀꽃

땅을 디딘 발은 연약하나 눈빛은 형형하다. 

 

 

 

 

 

 

  

 

 

 

 

 

 

 

옛 이화학당 정문

 

유관순의 생애

  •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에서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소제(李少悌)의 5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 아버지 유중권은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흥호학교를 설립하였다.
  • 1916년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보통과를 졸업한 1918년 이화학당 고등과에 입학하였다.
  • 서울에서 3·1 운동에 참가. 학생들이 다칠 것을 걱정한 프라이 교장이 3.1운동 참여를 만류했으나, 학교 담을 넘어가서 3.1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 1919년 3월 10일 모든 학교에 임시휴교령이 내려지자, 유관순은 같은 이화학당을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갔다.
  •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지휘했다.
  • 일본 헌병대는 유관순의 부모를 죽이고 유관순을 체포하여 검사국으로 이송하였다.
  • 유관순은 공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선고 되었다. 다시 경성 복심법원에 항소하여 징역 3년형이 언도되었다.
  •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하였다.
  • 1920년 10월 12일 이화학당에서 유관순의 시신을 인수하여 수의를 해 입혔다. 당시 서대문감옥에서는 고문사실이 알려질 것을 우려하여 시신을 내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이화학당 프라이 교장의 항의로 시신을 내주었다고 한다.
  • 1920년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우 목사 주례로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되어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 이태원 공동묘지가 일본의 군용기지로 전환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되는 과정에서 유골이 없어졌기 때문에, 유관순열사 기념사업회(1947년 조직됨)에서 1989년 10월 12일 매봉산 기슭에 초혼묘(招魂墓)를 봉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