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벗과 함께

성북동 가을을 걷다 1. 길상사

달처럼 2011. 10. 29. 18:34

 

간송미술관 가을 정기 전시회를 보려고 나선 걸음이었다.

차에서 내려 길게 늘어선 줄의 끝을 찾아가니 선잠단지 모퉁이를 돌아서고도 한참이다.

두세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듯하다.

아무래도 동행한 친구들에게 무리일 것 같아 방향을 돌렸다.

발을 돌리니 바로 길상사 가는 길이다.

고즈넉한 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길상사'를 떠올리면 공덕주 김영한 여사와 그녀 '子夜'를 사랑했던 백석 시인이 떠오른다.

평탄치 않은 사랑, 어긋난 운명, 민족의 분단은 그들에게도 치명적 이별을 안겨 주었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평생 백석의 생일에는 입에 음식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천 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 거야."

 

 

울창한 수목 사이로 법당이 보인다.

 

 

길상사의 본법당은 극락전이다. 석가모니불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모셨다.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것은 중생들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의 길로 이끄는 터전이 되기를 염원한 것이다.

 

 

조금은 특이한 관음보살상이다.

길상사 개산(開山) 당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만들어 봉안했다.

종교 간의 통섭이라고 해야 하나? 마리아상의 분위기가 겹쳐진다.

기원을 담아 발치에 놓은 화분이 앙증스럽다.

 

 

관음보살상의 전신 비율이 예전의 보살상과 상당히 달라졌다.

미학적 왜곡만은 아닐 터이다.

신라의 불상은 신라인의 모습을, 백제의 불상은 백제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극락전 가는 길목에 범종이 있다. 범종은 땅위와 하늘 세계를 울려 인간과 천신을 제도한다고 한다.

1997년 12월 대원각이 길상사가 되던 날, 7천여 평의 절터와 전각을 보시한 공양주 김영한은 

"저는 불교는 잘 모릅니다만...

저의 소원은 여인의 옷 갈아입는 소리가 나던 이 곳에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그녀의 비원이 담긴 범종이다.

 

 

김영한은 노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법정 스님을 만나뵙고 당시 시가 천억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하겠으니 절로 만들어 주기를 청하였다.

법정 스님은 10년에 걸쳐 사양하다가 그 뜻을 받아 들였다.

 

볕 바른 가을날 성북동 골짜기 길상사에는 낭랑한 독경 소리에 시민들의 웃음이 간간이 섞여든다.

그녀의 바람대로 시민들이 마음에 쉼을 얻는 곳으로 거듭나 있었다.

 

 

 

극락전 앞에 선 나무는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이 뜨락에 아름다운 나무가 어찌 이것 뿐이랴.

 

 

단청을 하지 않고 원형을 살린 극락전의 처마와 기둥선이 단아하다.

 

 

 

단조로운 창살이 담박(澹泊)한 미를 머금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은은하고 기품있는 미소를 연상시킨다.

 

 

 

 

가을꽃의 향기에 이끌려 벌 나비가 날아든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꽃향기는 더 농염해질 것이고, 벌 나비는 단맛에 도취되겠지.

지나간 역사에서 야망을 채우려 이 뜨락에 날아들었을 벌 나비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꽃담 반월형 쪽문 너머로 별유천지(別有天地)가 기다린다.

 

 

 

 

도화 뜬 맑은 물이 흘렀을 계곡이다. 산 그림자 드리운 다리 위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길상화 공덕비.

이 곳이 길상사가 되던 법석(法席)에서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으로보터 염주 하나와 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리고 2년 뒤 절에 와 참배하고 생애의 마지막 밤을 지낸 후 눈을 감았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한 구절)                     

 

다비를 마친 자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이 언덕에 흩뿌려지던 날에 첫눈이 내렸다.

눈이 푹푹 나리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에 가 살자는 백석의 시처럼 떠났다.

 

 

 

 

흙담장에 기와로 연꽃을 새겼다.

연꽃이 흙탕물에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듯 인생 고해에서 번뇌가 별빛이 되었으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

별채는 스님들이 참선하는 장소가 되었다.

 

 

평화가 깃든 숲 자체가 깨달음의 교과서요 수행처가 된다.

 

 

 

默言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 사이

낙엽이 수 놓은 뜰에서 예기치 않게 터지는 웃음

 

 

 

'반야당'

전에는 무얼 하던 곳이었는지. 지금은 시중스님의 처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