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곽재구
"아름다운 詩를 두고 차마 죽을 수도 없었지요"
와온 바다에 왔습니다. 지난해 3월 처음 이 바다를 만난 이후 이 바다는 내게 정서적인 혹은 정신적인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처음 이 바다에 들어섰을 때, 저물 무렵이었습니다. 한없이 펼쳐진 개펄 위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녁 노을들이 하늘 전체를 꽃밭으로 만들어 놓았더군요. 해 지는 쪽, 해 뜨는 쪽을 가리지 않고 말이지요.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꽃밭들은 개펄 위에도 찬란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개펄 위에는 여기저기 작은 물웅덩이들이 고여 있었고 그 웅덩이들 위에 노을들은 수없이 많은 꽃밭들을 이루어 놓았지요. 보리새우 새끼들이나 망둥이 새끼들이 조분조분 숨을 쉬고 있는 그곳… 지상 위의 꽃밭인 그곳. 나는 그곳의 방파제 위에 엎드렸습니다.
수평선을 넘어가는 마지막 햇살이 내 등을 따뜻하게 두드려줄 때 내 허름한 영혼 또한 이 바다의 꽃핀 개펄 위에서 한 마리의 금빛 보리새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내가 왜 문학을 하는가. 이 질문의 초입에서 내가 지닌 가장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그때 나는 기차여행 중이었습니다. 창 밖에는 시퍼런 물감 같은 어둠이 풀어져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무릎 위에 앉아 나는 그 어둠을 바라보았지요.
그때 나는 버려지는 중이었습니다. 무슨무슨 천사의 집이거나 아니면 아주 촌수가 낮은 어떤 친척집에 잠시 위탁되어야 할 형편이었지요. 그때 외삼촌이 내게 과자 한 봉지를 사 주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비닐봉지 안에는 색색의 별사탕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초록색, 분홍색, 하늘색, 흰색, 노란색의 별사탕들을 바라보며 불안하기만 한 어린 영혼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졌습니다. 내게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 나는 색색의 별사탕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별사탕이 지닌 꿈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 어린 영혼은 별사탕 한 봉지를 가슴에 안고 여행의 목적지가 어디인 줄도 모른 채 푹 잠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조금 흘렀군요. 고등학교 1학년 가을날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병구, 해철, 동석, 몽구, 용덕… 그들의 이름을 적어보는 이유는 그들이 내 글쓰기의 첫 스승들인 탓입니다. 나보다 두 세 단계 위의 시를 쓰고 있었던 그들은 내게 예술에 대해서, 그 혼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언어와 이미지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나의 모든 글쓰기는, 그 시절 이미 지금의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다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 생각만 했습니다. 눈 뜨면 시 생각하고 눈을 감아도 시 생각하고 길을 걸으며 늘 시를 썼지요. 시가 너무 사랑스러웠고 그래서 죽을 수도 없었지요.
고등학교 2학년 이후 나는 국어 교과서의 표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가방 안에 문학 서적 외에 어떤 종류의 교과서건 들어 있는 경우도 없었지요. 그런 내가 어떻게 대학 시험에 합격했는지 나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있습니다.
시의 신. 오직 그의 덕분이지요. 시 쓰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대학 시험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시의 신의 잘못이니까요. 그가 어느 날 입시의 신의 집에 찾아간 거지요. 두 손에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대학 시절, 친구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고 강의 시간은 아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한 가지의 기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것은 나해철과의 두 번째 만남입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그와 나는 매일 만나 함께 시를 썼습니다. 세 시간의 시간을 함께 비워두고 두 시간은 농과대학의 숲 속에 들어가 그 날 정한 제목으로 시를 쓰고 나머지 한 시간은 서로의 작품들을 바꿔 읽으며 둘만의 토론시간을 가졌지요. 아카시아 꽃향기가 가득 날리고 다시 싸리꽃이 은은하게 피어나던 그 숲길….
등록금 마련할 길이 더 이상 없어 군대를 가게 되었을 적 나는 전투경찰대에 지원했습니다. 남쪽 바다에서 서치라이트를 돌렸지요. 하늘 가득 원고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깊은 먹물의 바다 속에 눈부신 서치라이트 광선으로 시를 썼습니다. 습작의 광기와 국방의 의무가 결합된, 나로서는 견딜 만한 의미가 있는 시간들이 지나갔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내가 써야 할 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톨스토이와 타고르에 몰입했지요. 1905년쯤으로 기억됩니다. 눈보라가 펄펄 날리는 겨울날 톨스토이는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장원이 있는 야스나야 폴랴나까지 도보여행을 합니다. 200㎞에 가까운 길이지요. 그 쪽의 살인적인 겨울 추위는 나폴레옹의 군대를 다 얼려 죽인 이력이 있지요.
며칠 전 해외뉴스 시간에도 모스크바 일대에서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얼어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더군요. 인생의 모든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그가 그 눈보라 길을 죽지 않고 보름 동안 걸어, 자신의 장원에 도착하여 한 일은 농노 해방이었습니다. 오체투지… 육체를 스스로 학대할 수 있는 사람만이 순결한 영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지요.
1995년 겨울, 야스나야 폴랴나에 찾아갔을 때 잠시 나도 모스크바에서 그곳까지 도보여행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요.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영혼이 그런 용기를 내게 불어넣어 줄 리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숲길을 뒤져 장원 귀퉁이의 그의 묘소에 이르렀을 때 그 흔한 돌비석 하나 없더군요. 마른 꽃다발이 몇 개.
눈송이가 하나 둘 날리는 하염없이 낮고 작은 묘지에서 나는 그가 내쉬는 따뜻한 숨결들을 느끼고 또 느끼곤 했습니다. 자신의 영혼과 세상의 모든 생령들을 다 사랑한 그 꿈만으로 더 이상 치장할 수 없는 아름다운 묘역을 그는 이 지상에 마련한 것이지요. 그곳에 더 이상의 어떤 표지도 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타고르의 시들은 그 자체가 꿈결이었지요. 신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의 시에 나오는 달빛과 강물, 나룻배와 어린 소년의 노래, 엄마의 자장가, 라마야나 이야기와 챔파꽃 향기… 그런 모두가 떨리는 꽃 이파리처럼 가슴에 닿아왔습니다. 지상에 시가 있어서 행복했고 타고르가 있어서 지상 위의 어떤 길이건 끝없이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 처음 쓴 시의 한 줄을 타고르에게 보여주고 싶었지요. 바람이 슬쩍 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면, 이것 좀 봐, 그가 왔어, 타고르의 혼이 내 곁을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간 거야, 라고 생각했지요.
밤하늘에 뜬 무수한 별들이 그의 빛나는 눈빛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쓴 허름한 시들은 그의 형형한 눈빛의 체에 걸러져 단 한 줄도 지상에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의 성긴 체에도 걸러지지 않고 남은 시를 꼭 써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깊었습니다. 이봐, 타고르… 지금 얼른 내게 와요 내 시 좀 봐줘요….
어쩌자고 이런 위대한 두 영혼의 이름들을 지금 내가 붙들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군요. 기실은 꿈, 아닐런지요. 어릴 적 비닐봉지 안의 빛나던 별사탕들처럼 어떤 두렵고 쓸쓸한 영혼들에게도 따뜻함과 아름다움으로 남는 시. 삶이 너무 비참하고 굴욕적이어서 더 이상 존재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한심한 시간들 속에서도 먼 포구 마을의 불빛들처럼 가슴 안으로 안겨오는 그런 시. 그리운 그 시들을 나는 지금 여전히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와온 바다의 선착장에는 모두 18개의 가로등이 서 있습니다. 나는 그 가로등들에게 각각의 번호와 이름들을 붙여 주었지요. 그리고는 아침이거나 저녁이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 불거나 꽃이 지거나 가리지 않고 이 가로등 사이를 걷습니다.
걷다가 그 번호와 이름들에 걸맞은 시를 생각하고 잠시 주저앉아 음악을 듣다가 또 시 생각을 합니다. 지상에 언제부터 시가 있었을까요. 왜 내가 시를 쓰게 되었을까요. 왜 시를 쓰는 시간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까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내가 당신들을 사랑하고 당신들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그 시간들이 지상 위에 지속되는 한 시는 우리들 마음 안에 영원한 집이 되어 줄 것입니다.
'서리서리 > 좋아하는 글, 생각나는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챔파꽃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0) | 2010.08.08 |
---|---|
샨티니케탄 / 곽재구 (0) | 2010.08.08 |
사랑하는 이의 머리칼 (0) | 2010.07.04 |
[스크랩] 5분간 --- 詩/나희덕 (0) | 2010.04.26 |
春夜喜雨(춘야희우) (0) | 2010.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