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을 걸어 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쪽을
자욱이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정해종(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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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내 안에서도 불고 바깥에서도 분다.
적막까지도 깨우는 바람은 힘이 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람나고 싶은 4월.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드디어 바람이 됐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살아보고 싶은 4월.
바람이 돼도 아주 힘센 바람이 됐으면….
바람이 돼 모르는 나라로 귀순했으면….
귀순해서 바람을 꽃처럼 피우는 나라 하나 세웠으면….
천양희<시인>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는 천양희 시인이 뽑은 감동시 중의 하나이다.
두 시인의 말처럼 4월의 바람은 밖에서만 부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바람이 단단히 난다.
올해도 봄은 황사 바람과 함께 찾아왔지만
꽃나무는 그 바람으로 풍매화하여 생명을 이어 가고
그 바람에 훈풍이 실려와 대지는 겨울 잠에서 깨어 난다.
그러면 사람은 ...
꽃 피는 4월이면 사람도 바람이 나는가.
나는 이 봄에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수업 없는 시간에 뜨락을 거니는 일이 잦고
퇴근 길에 젊은이들을 부추겨 벚꽃 축제에 발도장 찍더니
혼자 식사를 하던 지난 일요일 아침
갑자기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미야, 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오늘 시간 괜찮으면 꽃바람 쐬러 갈까?'
이내 답장이 왔다.
'그럴까? 등산?'
이리하여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운길산 수종사에 가기로 하고
집안일 급한 대로 마무리한 후 10시에 회기역에서 만났다.
양평 방향으로 가는 국철 안에는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로 초만원이었다.
서 있기도 불편했지만 양원역을 지날 무렵엔
차창 밖으로 배꽃이 하얗게 핀 모습이 눈에 들어와 기분이 상쾌했다.
빼곡하게 들어섰던 사람들이 팔당역에서 일부 내리고,
우리는 다음 역인 운길산 역에서 하차했다.
말로 듣던 바와 같이 지도가 필요 없었다.
구름같은 등산 인파가 흘러가는 대로 따라 가면 그만이었다.
철길 아래로 지나는 도로를 빠져나가자 이내 들판이 펼쳐진다.
비닐 하우스 안에 자라는 딸기도 보이고, 형형색색의 각종 쌈채소가 자라는 모습도 보인다.
길가의 좌판엔 무공해 채소라고 한 무더기씩 쌓아 놓고 판매하기도 하고,
좌판 한 옆, 즉석에서 부치는 미나리 전은 구미를 당기게 한다.
지난 주까지 겨울 옷을 입고 지낼 만큼 쌀쌀하더니,
이 날은 날씨가 화창했고 부드러운 바람은 온기가 느껴져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길가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라일락 등이 한데 어울려 있다.
봄이 늦도록 추워 3, 4, 5월 꽃이 모두 한꺼번에 피었다고 한다.
동행한 친구는 등산하고 싶어도 혼자 나설 용기는 없는데
이렇게 불러 내 주어서 고맙다고 하고,
난 갑작스런 연락에도 기꺼이 동행해줘서 고맙다고 ...
내 친구 임수미.
언제 보아도 한결 같아서 좋다.
자랑하는 법도 없고,
아는 체 하는 것도 없고,
잔머리 굴리는 일도 없다.
더구나 중고교를 같이 다닌 그녀가 그 시절의 나를 좋게 기억하고 있어
그 추억을 이야기하면 나는 속 없이 우쭐하기도 하고,
저만치 사라져가던 자존감을 되찾으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녀에게는 속상한 이야기 털어 놓아도 나중을 염려하지 않아고 된다.
남에겐 감추고 싶은 고민도 그녀에게는 선뜻 드러내놓는다.
종종 자식 때문에 답답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눈다.
인생은 장거리인데 조급해 하지 말자며
맞장구를 치고는 깔깔 웃는다.
산행하는 내내 누가 무슨 말을 꺼내도 같이 웃어 주다보니
인생사 근심 걱정이 모두 봄눈 녹듯 한다.
억지 웃음이 아니라 더욱 좋다.
등산로는 부드러운 흙길이었고,
길 양 옆으로는 사람 키높이의 진달래가 길을 따라 줄지어 화사하게 피어 있어
산행의 피로를 느낄 새가 없었다.
이야기에 팔려 앞에 가는 사람들 뒤꼭지만 따라가다보니
산은 가파르고 수종사 이정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원래 목표는 수종사.
가벼운 산책 코스로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수종사는 저기 발 아래로 보이는 것이었다.
예기치 않게 우리 발길은 운길산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 돌아갈까?"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좀더 올라가자."
그 날 수미는 말했다.
"집 밖으로 불러낸 것은 네 功이고, 운길산 전상에 오른 것은 내 功이다."
그 말은 전적으로 맞다.
하산길에 수종사에 들러 삼정헌에서 마신 차 맛도 각별했고,
세조가 심었다는 500여 년 된 은행나무의 정정한 자태와
그 너머 양수리의 물빛이 만들어 내는 장엄한 풍경은 기쁨이었다.
지난 1월 무릎 연골 연화증과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은 이후로 등산은 엄두도 못 냈다.
친구와 함께 했기에 얼떨결에 610m 운길산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물론 그 후 이틀 간은 종아리 근육이 심하게 아팠지만 별 무리 없이 회복되고 나니 자신감도 생겼다.
친구야, 고맙다.
너는 나의 치유자이다.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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