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의 유래와 역사를 담은 대형 물레조형물
이 조형물은 높이 5.4m, 넓이 9.2m로 (주)경방에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제작·기증했다.
문래공원의 '박정희 흉상'.
박정희 소장이 5·16을 지휘했던 제 6관구 자리에 들어선 문래공원에는 '박정희 흉상'이 있다.
이 흉상은 5.16을 지휘했던 6관구 사령부 지하벙커에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6관구 사령부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전신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부대였다
영단주택
영등포구 문래동 영단주택은 주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1942년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뒤 도시로 이동하는 농민층이 급격히 늘었고 한국으로 유입되는 일본인 수도 많아졌다.
1930년대부터는 일본이 한국을 병참기지로 설정하면서 군수산업이 발달해 노동자들의 주택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41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것이 바로 조선주택영단이며,
조선주택영단에서 만든 것이 바로 영단주택이다.
영단주택은 당시 대규모 단지형 주택의 최초 모델이었다.
서울에는 대표적으로 문래동, 상도동, 대방동 등에 영단주택이 건립됐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현 문화재 전문위원)는
“1940년대 초반 지금의 주택공사에 해당하는 조선주택영단에서 지은 노동자 주택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고증한다.
안 교수는 “일제 때 지어져 지금은 곳곳이 폐허가 됐을 법도 한데 여전히 빈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활용이 잘 되고 있다”며
“일제강점기부터 경제성장기를 거쳐 현재까지 도시 주거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는 이곳을 개발 전에 일부만이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래동에는 영단주택 500채가 아직도 남아 있다.
'영단'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동네 슈퍼
그 좁은 골목에서 고추, 호박을 기르고, 포도나무를 기른다.
영단주택 단지 안에는 10~15평짜리 소규모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 공장주들은 “이곳은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문래 도시텃밭
카페 수다
정크 아트
침대 스프링을 활용한 게시판
서울시에서 발간한 서울의 마을 공동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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