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서리/책꽂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달처럼 2016. 6. 24. 21:40

로렌 슬레이터 지음 / 조증열 옮김, 에코의 서재, 2005


'세상을 바꾼 위대한 심리 실험 10장면'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열 명의 심리학자들의 가설 수립과 실험 과정을 소개하며 현대 심리학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글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주무르는 대로 만들어진다
- B.F.스키너의 보상과 처벌에 관한 행동주의 이론

2. 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 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

3. 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 달리와 라타네의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

4. 사랑의 본질에 관한 실험
- 해리 할로의 애착 심리학

5. 마음 잠재우는 법
-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6.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에 들어가기
- 대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7. 약물 중독은 약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199
-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8.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233
-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9. 기억력 주식회사…269
- 기억 메커니즘을 밝혀낸 에릭 칸델의 해삼 실험

10. 드릴로 뇌를 뚫다…299
-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정신 치료 



 1장에서는 B.F.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의 행동주의 심리학을 소개하고 있다.

스키너는 파블로프의 개의 침샘 실험에 주목하면서 점막의 조건 반사가 아닌 유기체의 조건화가 가능한지 실험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음식과 지렛대, 그 밖의 환경 자극을 이용해 언뜻 보기에는 자율반응(autonomous response)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제로는 자극에 의해 유도된 것임을 실헙으로 증명하였다. 그 결과를 토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스키너는 '긍정적 강화'의 방법으로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고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조작적 조건화'(operant conditioning)를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자신의 딸을 훈련시키려고 2년 동안 상자 속에서 실험했다. 물론 그 상자는 자동 온도 습도 조절 장치를 갖추고, 보상만 주는 환경이었으나 괴담이 만연하기도 했다. 주 실험을 통해 음식을 보상으로 줄 경우 지렛대를 누르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알아내고, 나아가 간헐적 보상에 의해 강화된 행동이 소멸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로써 인간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행동의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기분이 내킬 때만 전화를 거는 못된 애인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행동은 '간헐적 강화'가 가진 강박성 때문이다.

이 이론 덕분에 1950년대 주립 요양 시설에서 치유불가능한 정신분열증 환자들까지 스스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수저 한 번 들 때 담배 한 개비 보상 등의 강화의 결과였다. 스키너 박사 때문에 사람들이 처벌보다 보상에 더 많이 반응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B학점을 받아야 할 학생에게 A학점을 주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자에게 일을 잘 하고 있다고 계속 이야기 해 주는 것이 효과가 뛰어나다는 지식도 스키너 박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1장은 스키너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편견에서 시작하여 그가 이룩한 행동주의 심리학의 긍정적 영향으로 풀어가고 있다. 내가 들은 소문과 내가 아는 이미지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낸 편견 덩어리임을 은연중에 깨닫게 하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다.


2장에서는 사회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이 연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 나치 장교들이 어떻게 최고 사령관의 명령을 받들어 극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당시 유행한 권위주의적 성걱 이론은 게르만식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밀그램은 비인도적인 명령에 복종하는 이유를 성격보다 '상황'에 있다고 믿었다. 대단히 설득적인 생황이 생기면 이성적인 사람도 명령에 따라 잔혹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밀그램의 실험은 '가짜 충격기계'로 행해졌다. 지원자를 모아 치명적으로 강한 전기 충격을 명령하면 사람들은 사실로 믿고 전기 충격을 가했다. 실제로 전기 충격이 가해지지는 않는 장치였지만, 충격을 받는 자는 배우로서 고통을 연기하고 죽는 것처럼 가장했다. 실험 결과 62~65%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힐 정도로 명령에 복종했다. 살인이 분노와 무관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가가 성격보다 중요하다."라고 <인간과 상황: 사회심리학의 전망>에서 리 로스 교수가 한 말은 밀그램의 실험 이후 사회심리학자들이 영혼보다 맥락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직장에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동료가 형편 없는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도, 침묵했던 것도 일종의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 그런 심리 기제가 나치의 폭력과 맥락을 하는 것이라니 온몸이 오싹해진다.


3장에서는 1964년 뉴욕에서 발생한 범죄의 증인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에 나섰던  심리학자 존 달리(John Darley)와 빕 라타네(Bibb Latane)의 실험을 소개한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살인 사건은 한 여성이 35분 동안 세 차레에 걸쳐 연속적으로 칼에 찔리는 공격을 당하며 비명을 지르면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38명의 주민이 아파트 창가에서 구경만 했을 뿐, 구조는 커녕 경고성 고함 한 번 지르지 않았던 것이 <뉴욕 타임스> 지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달리와 라타네는 실험에서 살인 대신 간질 발작으로 바꾸고, 다른 방에 격리되어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대화 중에 발작으로 목소리가 졸리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뉴욕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이 자기 말고  도와 줄 사람이 네 명이 더 있다고 믿었을 때, 6분 동안 대다수의 피실험자들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31%만 행동을 취했다. 반면에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학생과 단 둘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피실험자의 85%가 수수방관하지 않고 도움을 청했고, 그것도 발작이 일어난 지 3분 안에 조치를 취했다. 제노비스 살인 사건의 증인들도 무관심 때문에 대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응을 할 것인가 말 것이가 사이에서 갈등하고 우유부단해 하는 상황이었다고 해석한다. '책임감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라고 이름 붙인 현상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즉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적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실험인 연기 실험에서도 결과는 유사했다.

몬태나 대학의 사회 과학자 아서 비먼(Arthur Beaman) 교수는 대학생을 모집하여 달리와 라타네의 간질과 연기 실험을 녹화한 필름을 틀어 주었다. 그 텡프에는 남을 돕는 행위가 다음의 다섯 단계로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사건 목격 단계 - 도움 인식 단계 - 책임 인식 단계 - 행동 결정단계 - 행동 단계'

필름을 보고 훌륭한 시민 의식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단계가 무엇인지 깨달은 학생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두 배 이상 도움을 주는 경향을 보였다.

이 실험을 읽으며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던 기억을 환기했다. 심정지를 확인하고(check), 신속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compression), 구체적으로 한 사람을 자목하여 119에 신고하게 하고(call), 또 다른 한 사람을 지목하여 제세동기를 가져오게 한다. 119가 올 때까지 기도를 유지하며 인공호흡(breathing)과 심폐소생술을 실시한다. 교육을 통해 남을 돕고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기를 필요가 인식되는 대목이다.


4장에서는 해리 할로(Harry Harlow)의 애착 심리학을 다룬다. 유아기의 붉은털원숭이들은 우유를 든 금속 재질의 가짜 어미보다 우유는 나오지 않으나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더 선호했다. 새끼들은 천을 두른 가짜 어미에게 매달리고, 위로 기어다니고, 얼굴을 만지고, 배와 등 위에서 몇 시간씩 보냈다. 배가 고플 때만 젖이 달린 철사 어미에게 달려가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천 어미에게 달려 갔다. 이 실험을 통해 할로는 사랑이 입맛이 아닌 스킨십으로부터 자란다는 것을 입증했다. 결국 모든 상호작용은 초기에 형성되는 감촉의 재현이고, 인간이 우유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자녀를 냉정하게 키우는 시대였다. 저명한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포크 박사는 아이들에게 시간에 맞춰 음식을 주라고 충고했다. 스키너는 강화와 처벌이라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이해하여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안아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밤에 잘 자라는 키스도 해 주지 말고, 데신 아이의 방의 불을 끄기 전에 간단한 인사와 함께 손을 흔들어 주라고 했다. 하지만 할로는 주저하지 말고 아이를 안아주라고 하면서 그것이 아이를 망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할로 연구팀은 '스킨십이 주는 편안함'을 사랑의 본질적인 요소로 파악했다. 부모들로 하여금 언제나 아이와 가까이 지내게 하고, 함께 잠을 자라고 주장한 것도 할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를 산모의 배 위에 올려두는 방법을 터득한 것도 할로의 덕택이다,

90년대 중반에 출산을 앞둔 시기에 육아에 대해 공부하려고 선택한 책이 하필이면 스포크 박사의 육아전서였다. 그 내용에 충실하게 시간 맞춰 젖을 물린 일은 평생을 두고 후회되는 대목이다. 아기가 젖을 찾으면 언제라도 젖을 물리던 우리네 방식을 접어두고, 먹물 든 젊은 엄마는 시간만 계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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